전체 글370 추모는 왜 ‘표현’이 아니라 ‘위반’이 됐나(올림픽의 중립 규정이 만들어낸 역설, 완장만 허용한 절충안의 한계, 규칙이 인간을 이기지 않게 하려면) 올림픽이 ‘정치로부터의 안전지대’라는 말을 붙잡고 살아남아 온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전 세계가 한 공간에 모이는 만큼, 대회는 갈등을 흡수하기보다 차단하는 쪽을 선택해 왔다. 하지만 그 선택이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스켈레톤 선수 블라디슬라프 헤라스케비치가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이 담긴 ‘추모 헬멧’을 쓰고 경기에 나서려 했다는 이유로 출전 금지를 당했다는 소식은, 올림픽이 지키려는 중립이 무엇을 보호하고 무엇을 밀어내는지 다시 묻게 만든다. 추모는 원래 가장 개인적인 감정인데, 그 감정이 규정의 언어로 ‘시위’나 ‘선전’으로 분류되는 순간, 중립은 갑자기 차갑고 날카로운 칼이 된다. 보도에 따르면 IOC는 헤라스케비치가 선수 표현의 자유 지침을 준수하지 않았다며.. 2026. 2. 16. 올림픽은 축제인가 감시의 무대인가(응원하러 왔다가 잡힌 아이러니, ‘자동 경고 시스템’이 바꾼 도피의 규칙, 안전과 자유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올림픽은 보통 ‘도망칠 곳 없는 축제’처럼 묘사된다. 전 세계가 몰려들고, 도시가 화려하게 단장되고, 경기장 주변은 한동안 다른 시간대에 사는 것처럼 들뜬다. 그런데 이번 이야기는 그 축제의 표면 아래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조금 불편하게 보여준다. 16년 동안 도망 다니던 슬로바키아 출신 수배자가 자국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려고 밀라노에 잠입했다가 체포됐다는 소식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지만, 웃고 끝내기엔 질문이 남는다. 그는 왜 그 순간에 ‘잡힐 것’을 알면서도 들어왔을까. 그리고 그는 정말 ‘실수’로 잡힌 걸까, 아니면 애초에 이런 대형 이벤트에서 도피가 가능한 시대가 끝난 걸까. 기사에 따르면 이 남성은 2010년 절도 사건으로 수배 상태였고, 밀라노 외곽 캠핑장에 숙박 등록을 하는 과정에서 ‘범.. 2026. 2. 15. 대역전은 ‘기술’보다 ‘마음’에서 시작된다(넘어짐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는 감정의 복원력, 900과 720이 만든 가장 어려운 선택, 한국 스키 첫 금메달이 남긴 조용한 의미) 올림픽 결선에서 ‘대역전’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사람들은 보통 점수표부터 떠올린다. 10점으로 11위였다가 90.25점으로 1위가 됐다, 최강자로 불리던 클로이 김을 제쳤다, 한국 스키 사상 첫 금메달이다. 하지만 그 숫자들이 진짜로 말해주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더 정확히는, 결과가 나오기 직전까지도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던 ‘마음의 움직임’이다. 최가온의 금메달이 특별한 이유는 고난도 기술을 완벽히 밀어붙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무너진 상황에서 다시 자기 자신을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다. 결선 1차 시기, 두 번째 점프에서 크게 넘어지고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던 장면은 그 자체로 경기의 방향을 바꿔놓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몸이 괜찮을지, 남은 시기를 소화할 수 있을지, 혹은 출전 자체가 어려.. 2026. 2. 14. 친환경 메달, 품질은 왜 두 동강 났나(‘지속가능성’ 홍보의 빈틈, 선수에게 전가된 내구성 책임, 신뢰를 회복하는 교체·검증의 원칙) 올림픽 메달은 단순한 금속 조각이 아니다. 선수에게는 인생의 시간과 고통이 응축된 증거이고, 대회에게는 공정과 권위의 상징이다. 그래서 메달이 금이 가거나 두 동강 났다는 소식은 당혹을 넘어 불안으로 번진다. 더구나 그 메달이 ‘친환경’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다면, 논란은 품질 문제를 넘어 “우리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나”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지속가능성은 방향이지만, 방향이 목표를 대체할 수는 없다. 이번 밀라노 올림픽 메달 파손 사례는 그 단순한 원칙을 다시 확인하게 만든다. 보도에 따르면 일부 선수들이 시상 이후 메달의 리본이 분리되거나, 메달이 금이 가고 두 동강 나는 문제를 겪었다. 조직위원회는 논란을 인지하고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선수들이 대체 메달을 받.. 2026. 2. 13. 동계올림픽은 공공재인가 상품인가(JTBC 독점 중계가 남긴 시청권의 틈, 중계권료 게임의 승자와 패자, 보편적 시청권을 되살릴 제도적 해법) 올림픽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도, 막상 TV를 켜면 어디에서 봐야 하는지 헷갈린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올림픽 언제 시작했나?”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 현실의 반응이 됐다면, 그건 단순히 관심이 줄어서가 아니라 접근이 어려워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 개막했지만, 국내에선 JTBC의 단독 중계 체제로 인해 시청 경로가 제한됐고, 그 결과 ‘국민적 이벤트’가 ‘찾아야만 볼 수 있는 콘텐츠’처럼 변했다. 문제는 이 변화가 우연이 아니라, 중계권 시장의 구조와 이해관계가 만든 예고된 결과에 가깝다는 점이다. 중계권은 원래 돈이 드는 상품이다. 방송사가 비용을 지불하고 권리를 사 와 제작·편성해 내보내는 구조는 시장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올림픽은 그 이상의 성격.. 2026. 2. 12. 42세 도전의 추락, 우리는 무엇을 소비했나(‘열정’의 미학, 미디어의 자극, 위험을 대하는 태도) 기사 한 편이 사람의 마음을 순식간에 흔듭니다. “42세 스키 여제”, “끔찍한 추락”, “모두의 만류에도 올림픽 도전” 같은 문장들은 사실을 전달하기 전에 감정을 먼저 설계합니다. 읽는 우리는 충격을 느끼고, 안타까워하고, 때로는 ‘그래도 도전했으니 대단하다’ 혹은 ‘왜 무리했나’ 같은 판단을 서둘러 내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멈춰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단지 한 선수의 비극적인 사고인가요, 아니면 우리가 스포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만들어낸 익숙한 서사인가요. 린지 본이라는 이름이 크면 클수록, 사고를 다루는 문장도 더 커지고 더 자극적으로 부풀어 오릅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의 추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입니다.원본 글은 하나의 흐름으로 독자를 .. 2026. 2. 11. 이전 1 2 3 4 ··· 6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