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 결선에서 ‘대역전’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사람들은 보통 점수표부터 떠올린다. 10점으로 11위였다가 90.25점으로 1위가 됐다, 최강자로 불리던 클로이 김을 제쳤다, 한국 스키 사상 첫 금메달이다. 하지만 그 숫자들이 진짜로 말해주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더 정확히는, 결과가 나오기 직전까지도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던 ‘마음의 움직임’이다. 최가온의 금메달이 특별한 이유는 고난도 기술을 완벽히 밀어붙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무너진 상황에서 다시 자기 자신을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다.
결선 1차 시기, 두 번째 점프에서 크게 넘어지고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던 장면은 그 자체로 경기의 방향을 바꿔놓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몸이 괜찮을지, 남은 시기를 소화할 수 있을지, 혹은 출전 자체가 어려울지까지 우려가 커졌고, 전광판에 ‘출전하지 않는다’ 표시가 잠시 뜬 상황은 불안을 더했다. 2차 시기에서도 다시 넘어졌다. 그럼에도 마지막 3차 시기에 들어가서, 그는 ‘승부를 걸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완주해야 하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이 만들어낸 90.25점은 단순한 점수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넘어짐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는 감정의 복원력
넘어짐은 하프파이프에서 흔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올림픽 결선에서의 넘어짐은 단지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몸의 충격’과 ‘마음의 충격’이 동시에 찾아오는 사건이다. 특히 1차 시기 도중 크게 넘어져 의료진이 들어왔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는 서술은 그 충격이 단순한 미끄러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때 선수에게 가장 먼저 밀려드는 감정은 두려움일 수밖에 없다. 몸이 보내는 경고는 본능을 흔들고, 본능이 흔들리면 기술은 흔들린다.
그럼에도 최가온은 결선의 끝까지 남아 있었다. 이것이 ‘복원력’이다. 복원력은 강인함과 조금 다르다. 강인함이 “버틴다”라면, 복원력은 “다시 돌아온다”에 가깝다. 넘어졌던 몸의 감각을 다시 자기편으로 돌리고, 관중의 소리와 전광판의 표시와 의료진의 움직임까지도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의 배경으로 흘려보내는 능력이다. 누구나 넘어질 수 있지만, 넘어지고 난 뒤에 자신을 다시 선수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게다가 최가온은 마지막 시기를 앞두고 11위였다. 이 순위는 심리적으로도 가혹하다. 앞선 선수들의 점수는 벽처럼 느껴지고, 남은 기회는 딱 한 번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는 흔히 두 갈래 길 앞에 선다. 하나는 모든 것을 걸고 난도를 극단으로 끌어올리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정확하게 해내는 길이다. 대역전 드라마는 보통 첫 번째 길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번 대회에서 인상적인 건 두 번째 길이 만들어낸 반전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가능한 것’의 범위를 정확히 계산해 ‘확실한 것’을 실행했다. 그 선택은 두려움을 지우는 방식이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뛰는 방식이었다.
900과 720이 만든 가장 어려운 선택
기사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대목은, 최가온이 1080도 이상의 고난도 연기 대신 900도와 720도 회전 등을 구사했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면 난도를 낮춘 전략처럼 보인다. 하지만 올림픽 결선에서 난도를 낮추는 결정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선택은 ‘자존심’을 내려놓는 선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계 정상급 무대에서 선수는 늘 자신이 가진 가장 화려한 카드를 꺼내고 싶어진다. 특히 11위라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는 그 욕망을 잠시 뒤로 미뤘다. 여기에는 냉정함이 있고, 성숙함이 있다.
하프파이프 점수는 난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회전, 높이, 안정적인 착지, 전체 흐름의 완성도가 같이 보인다. 넘어짐을 겪은 직후라면, 몸의 반응 속도와 균형 감각이 평소와 다를 수 있다. 게다가 눈이 내리는 코스 컨디션까지 고려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착지의 확신’이다. 그때 더블 콕 1080 같은 기술을 고집하는 것은 용기라기보다 무모함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900과 720을 “완주할 수 있는 설계”로 묶어내는 건, 무모함을 버리고 승부를 다시 설계하는 능력이다.
그가 3차 시기에서 9기술(2.5바퀴)을 세 번 성공시키며 90.25점을 받아낸 장면은 ‘난이도를 낮췄다’는 단순한 문장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난도를 조절한다는 것은 단지 쉬운 기술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몸 상태와 환경 조건과 심판의 평가 요소를 모두 고려해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구성”을 다시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 구성은 ‘완주’가 전제다. 넘어짐 이후에 완주를 선택한다는 것은, 경기의 목표를 바꾸는 게 아니라 목표로 가는 길을 다시 찾는 것이다.
여기서 감동이 생기는 이유는, 우리는 대개 ‘최고의 기술’을 성공시키는 장면에서만 위대함을 본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포츠가 진짜로 위대해지는 순간은 종종 다른 곳에 있다. 최고의 기술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서 가능한 최선의 선택을 해내는 순간. 최가온의 3차 시기는 그런 의미에서 기술의 승리이기 이전에 판단의 승리이고, 판단의 승리이기 이전에 마음의 승리였다.
한국 스키 첫 금메달이 남긴 조용한 의미
‘한국 스키 사상 첫 동계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문장은 크게 울린다. 하지만 그 문장이 진짜로 남기는 의미는 조용하다. 이 금메달은 단지 하나의 기록이 아니라, 한국 설상 종목이 걸어온 시간이 한 번에 보상받는 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이상호의 은메달이 있었고, 이번 대회에서도 은메달과 동메달이 이어졌다. 그 흐름 속에서 첫 금메달이 나왔다는 것은, 한 명의 천재가 갑자기 등장했다는 이야기라기보다, 선수와 지도자와 환경이 조금씩 쌓여온 결과라는 뜻에 가깝다.
또 하나의 의미는 ‘나이’가 아니라 ‘시간’에 있다. 최가온이 최연소 기록을 경신했다는 대목은 뉴스로서 강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가 그 나이에 감당해야 했던 시간들이다. 넘어짐, 부상 우려, 잠시 표시된 DNS, 다시 넘어짐, 그리고 마지막 시기에서의 완주. 이 모든 시간은 단 몇 분 안에 흘러가지만, 그 몇 분은 선수의 생애에서는 길게 남는다. 올림픽은 원래 한 번의 런으로 선수의 인생을 요약해 버리는 잔인함이 있는데, 최가온의 결선은 그 잔인함을 조금 무디게 만들었다. 인생을 요약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다시 써 내려가는 방식으로 결선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클로이 김을 넘어섰다는 사실도 대단하지만, 그것은 상대의 이름이 만들어낸 상징성만큼이나 ‘자기 자신을 넘어섰다’는 상징성으로 읽히는 것이 더 아름답다. 결선 3연패라는 거대한 서사를 가진 선수를 이겼다는 말보다, 넘어져도 다시 설계하고 다시 완주해 승부를 뒤집었다는 말이 더 오래 남는다. 금메달은 걸어두면 빛나지만, 그 빛을 계속 기억하게 만드는 건 결국 그 메달이 만들어진 이야기다.
결론
내가 이 금메달을 가장 인상 깊게 보는 이유는, 이 승리가 ‘가장 센 기술을 가진 사람이 이긴 경기’가 아니라 ‘가장 잘 회복한 사람이 이긴 경기’로 보였기 때문이다. 1차 시기 넘어짐은 누구에게나 경기 종료를 의미할 수 있었고, 2차 시기의 또 한 번의 실패는 포기를 합리화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최가온은 그 합리화를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몸 상태와 코스 컨디션, 그리고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의 범위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만들 수 있는 방식으로 다시 구성했다. 그 정직함이 오히려 드라마를 만들었다.
또 한 가지는, 우리가 흔히 ‘대역전’이라는 말을 결과로만 소비할 때 놓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대역전은 마지막 점수판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시기를 시작하기 직전에 마음속에서 먼저 일어난다. “이제 끝”이라고 느껴질 때 “아직 할 수 있어”로 방향을 바꾸는 그 작은 움직임이 결국 90.25점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번 금메달은 한국 스키의 첫 금메달이라는 기록을 넘어, 위기에서 자신을 다시 세우는 방법을 보여준 장면으로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장면이 하나 남으면, 다음 세대는 ‘금메달이 가능한 종목’이라는 상상을 더 쉽게 할 수 있다. 기록의 최초는 숫자이지만, 최초가 만들어내는 진짜 힘은 상상력이다. 최가온의 결선은 그 상상력을 현실로 바꾼 이야기다. 넘어졌지만 끝나지 않았고, 흔들렸지만 무너지지 않았고, 난도를 낮췄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 선택들이 모여 만든 금메달이라서, 나는 이 금메달이 더 단단하게 느껴진다.
사진출처 - https://www.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