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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은 공공재인가 상품인가(JTBC 독점 중계가 남긴 시청권의 틈, 중계권료 게임의 승자와 패자, 보편적 시청권을 되살릴 제도적 해법)

by rootingkakao 2026. 2. 12.

올림픽 채널을 찾고 있다

올림픽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도, 막상 TV를 켜면 어디에서 봐야 하는지 헷갈린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올림픽 언제 시작했나?”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 현실의 반응이 됐다면, 그건 단순히 관심이 줄어서가 아니라 접근이 어려워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 개막했지만, 국내에선 JTBC의 단독 중계 체제로 인해 시청 경로가 제한됐고, 그 결과 ‘국민적 이벤트’가 ‘찾아야만 볼 수 있는 콘텐츠’처럼 변했다. 문제는 이 변화가 우연이 아니라, 중계권 시장의 구조와 이해관계가 만든 예고된 결과에 가깝다는 점이다.

 

중계권은 원래 돈이 드는 상품이다. 방송사가 비용을 지불하고 권리를 사 와 제작·편성해 내보내는 구조는 시장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올림픽은 그 이상의 성격을 갖는다. 국가대표가 참여하고, 전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며, 사회적 경험을 공유하게 만드는 사건이다.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 올림픽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보편적으로 접근 가능한 방식’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을 어느 정도 제도화해 왔다. 이번 단독 중계 논란은 바로 그 원칙이 시장 논리에 밀려난 순간을 보여준다.

JTBC 독점 중계가 남긴 시청권의 틈

이번 동계올림픽은 지상파 3사가 아닌 JTBC만 단독 중계를 맡았다. 기사에 따르면 지상파가 공동 구매를 통해 보편적 시청권을 지키고 중계권료 폭등을 막아오던 관행이 깨졌고, 그 결과 ‘올림픽인데도 TV에서 보기 어렵다’는 체감이 생겼다. 개회식 시청률이 1.8%에 그쳤다는 대목은 상징적이다. 물론 시청률이 낮다고 해서 곧장 “국민이 올림픽에 관심이 없다”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관심을 확인하는 잣대 자체가 ‘얼마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느냐’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시청권의 핵심은 ‘보고 싶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길이 열려 있느냐’다. 지금은 길이 좁아졌고, 길 안내도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다. 특히 고령층이나 플랫폼 이동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채널 하나의 변화가 곧 접근 불가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국회에서 “채널 몇 번 봐야 되니, 안 보이니”라는 말이 나온 건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 이용자 경험을 대변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더 불편한 지점은 올림픽이 개인의 취향 콘텐츠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떤 드라마나 예능을 특정 플랫폼이 독점해도, 소비자는 대체재를 찾거나 관심을 접는 선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올림픽은 ‘국가대표의 경기’라는 특수성을 통해 공적 의미를 가진다. 그 공적 의미는 “누가 돈을 더 냈느냐”보다 “얼마나 넓게 함께 볼 수 있느냐”에서 완성된다. 독점 중계가 합법일 수는 있어도, 공정하고 정당 한 지에 대한 질문은 남는다.

중계권료 게임의 승자와 패자

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JTBC가 IOC·FIFA와 단독 입찰에 나섰고, 과거 사례를 뛰어넘는 높은 가격을 제시해 독점 중계권을 따냈다는 부분이다. 여기에는 중계권 시장의 전형적인 ‘치킨게임’이 들어 있다. 한 사업자가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면, 그 순간 가격은 상향 고정된다. 그리고 그 부담은 어디론가 منتقل되어야 한다. 광고 단가를 올리거나, 유료 플랫폼으로 유도하거나, 재판매를 통해 비용을 회수하려 한다. 방송협회가 “상승시킨 중계권료 부담을 재판매로 떠넘기려 한다”라고 해석한 것도 바로 이 구조를 가리킨다.

 

이 게임의 승자는 누구일까. 단기적으로는 IOC와 FIFA다. 값이 올라가면 가장 먼저 이익을 얻는 쪽은 권리의 원천을 가진 국제 스포츠 기구다. 그 다음은 독점을 얻은 사업자다. 독점은 편성권을 쥐게 하고, 광고·구독·부가사업에서 유리한 위치를 만든다. 문제는 그다음 단계에서 패자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지상파는 공동 구매 관행이 깨지며 협상력과 역할이 줄어든다. 더 직접적인 패자는 시청자다. 접근 경로가 제한되고, 정보가 흩어지며, “그냥 못 보겠다”는 체념이 늘어난다.

 

흥미로운 건 이 구조가 결국 스포츠의 가치 자체를 깎아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올림픽의 매력은 경기력만이 아니라 사회적 축제성, 공동체적 시청 경험에서 온다. 그런데 독점 체제로 인해 시청이 줄면, 장기적으로는 스폰서 가치와 국내 팬덤 기반이 약해질 수 있다. 즉, 중계권료를 올려 단기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장기적으로는 시장을 축소시키는 역설이 생긴다. 올림픽이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사안”이라는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위원장의 발언은 그래서 더 무겁다. 관심도가 높은 이벤트를 일부만 보게 만들면, 관심도 자체가 떨어지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하는 셈이 된다.

보편적 시청권을 되살릴 제도적 해법

정부가 유감을 표하고 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배경에는, 이 문제가 단순한 기업 간 분쟁이 아니라 ‘보편적 시청권’이라는 공공정책 영역에 걸쳐 있다는 인식이 있다. 그렇다면 해법도 “누가 중계권을 가져가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국민적 이벤트를 어떤 규칙으로 유통할 것이냐”의 설계로 가야 한다.

 

첫째, ‘국민관심행사’ 또는 이에 준하는 이벤트에 대해 최소한의 무료 접근을 보장하는 장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특정 사업자가 권리를 갖더라도, 핵심 경기나 개회식·폐회식 같은 주요 프로그램은 일정 범위에서 공중파 또는 보편적 접근이 가능한 채널로 동시 송출하도록 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독점을 완전히 금지하지 않더라도, 공공성이 강한 구간에 한해서는 예외 규칙을 두는 것이다.

 

둘째, 중계권료 급등을 부르는 단독 입찰 구조를 완화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더 많이 부르는 쪽이 이기는” 방식만 허용하면, 가격 인플레이션은 반복된다. 공동구매를 담합으로만 보지 않고, 보편적 시청권을 확보하기 위한 협의체로 인정하는 정책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 공동구매가 작동할 때 시장이 항상 이상적이진 않지만, 최소한 시청자 접근성을 보장하는 안전판으로는 기능해 왔다.

 

셋째, 플랫폼 시대에 맞는 ‘접근성 고지 의무’ 같은 실무적 규칙도 중요하다. 독점 중계를 하더라도, 시청자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볼 수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어야 한다. 방송사 홈페이지나 앱 공지로 끝낼 일이 아니라, 공중파 자막 안내, 포털 메인 연계, 통합 안내 페이지 등 공공성에 맞는 수준의 안내가 필요하다. 시청권은 법과 계약만으로 완성되지 않고, 실제 이용자 동선에서 비로소 성립한다.

 

넷째, 재판매 협상 구조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도 핵심이다. 기사에는 재판매 제안이 있었지만 협상이 결렬됐다고 나온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피해는 시청자가 떠안는다. 재판매가 가능하다면 합리적 기준과 절차가 있어야 하고, 재판매가 불가능하다면 그 이유가 공적 기준에서 설명 가능해야 한다. ‘협상 결렬’이라는 한 줄로 넘어가면, 결과적으로 시청권 제한이라는 공적 피해만 남는다.

 

관련 논의가 진행될 경우, 방송·통신 정책을 다루는 기관의 공지와 제도 방향을 꾸준히 확인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결론

이번 동계올림픽 단독 중계 논란은 “올림픽을 누가 중계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올림픽을 어떤 성격의 콘텐츠로 취급할 것이냐”를 묻는 사건이다. 소제목1에서 보았듯 시청권은 단지 켤 수 있는 채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이 공동체적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통로의 문제다. 통로가 좁아지면 관심은 자연스럽게 줄고, 관심이 줄면 올림픽의 공적 의미도 약해진다.

 

소제목 2에서 확인했듯 중계권 시장은 가격 경쟁이 격해질수록 국제기구와 독점 사업자의 이익이 커지는 구조를 갖는다. 그러나 그 구조는 장기적으로 국내 시청 기반을 약화시키고 스포츠 문화의 저변을 좁힐 위험을 함께 키운다. “돈을 더 낸 쪽이 권리를 가진다”는 명제는 시장에선 맞을지 몰라도, 올림픽처럼 공공성이 강한 이벤트에 그대로 적용될 때는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그래서 소제목3의 해법은 ‘누구를 탓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만들 것인가’로 이동해야 한다. 핵심 구간의 보편적 접근 보장, 단독 입찰이 부르는 가격 인플레이션 완화, 이용자 동선 중심의 접근성 고지, 재판매 절차의 투명성 같은 장치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올림픽이 정말 국민적 이벤트라면, 국민이 “언제 시작했는지”조차 놓치게 만드는 구조는 정상이 아니다. 올림픽을 상품으로만 취급하는 순간, 우리는 올림픽이 만들어내는 가장 큰 가치인 ‘함께 보는 경험’을 잃는다. 그리고 그 손실은 중계권료의 숫자보다 훨씬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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