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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설원의 은메달,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첫 메달의 환호, 400호의 숫자, 37세 베테랑의 서사)

by rootingkakao 2026. 2. 10.

은메달을 목에건 김상겸선수

밀라노 올림픽의 설원에서 한국 선수단의 첫 메달이 나왔다는 소식은 단숨에 사람들의 감정을 끌어올립니다. 특히 스노보드 알파인이라는 종목의 특성상, 결승선에서 0점 몇 초로 갈리는 결과는 더 극적으로 소비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일수록 한 발 떨어져 질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은메달’이라는 결과를 보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 결과 위에 덧씌워진 ‘서사’와 ‘숫자’와 ‘상징’을 보고 있는 걸까요. 김상겸이라는 이름이 만들어낸 감동은 분명 값지지만, 그 감동이 무엇을 가리고 무엇을 드러내는지까지 함께 바라볼 때 비로소 이 메달의 의미가 더 단단해집니다.

원본 글은 첫 메달, 통산 400호, 37세 베테랑의 인간 승리, 랭킹 1위 격파, 그리고 이상호의 탈락이라는 대비를 한데 묶어 ‘국가적 낭보’로 정리합니다. 이 구성은 독자가 빠르게 몰입하도록 돕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장점이 강할수록 단점도 커집니다. 승리의 서사는 종종 설명을 단순화하고, 단순화된 설명은 중요한 질문을 뒤로 미룹니다. 이제 그 질문들을 조심스럽게 꺼내보겠습니다. 의심은 폄훼가 아니라, 의미를 더 정확하게 만들기 위한 도구입니다.

첫 메달의 환호

첫 메달은 언제나 상징적입니다. 대회 초반의 ‘첫 단추’라는 의미가 붙으면서 이후 경기들의 기대감도 덩달아 올라갑니다. 원본 글이 말하듯, 결승에서 0.19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다는 서술은 독자의 심장을 정확히 찌릅니다. 하지만 여기서 첫 번째 의심이 생깁니다. ‘첫 메달’이라는 표현이 우리에게 실제로 어떤 정보를 주는가 하는 점입니다.

첫 메달은 결과의 질을 설명하기보다, 시간 순서가 만들어낸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같은 은메달이라도 대회 마지막 날 나왔다면 ‘대미를 장식’했다는 말이 붙고, 초반에 나오면 ‘물꼬를 텄다’는 말이 붙습니다. 즉, 메달 자체의 경기력 의미와는 별개로, 서사가 먼저 달라집니다. 이 서사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서사가 너무 강하면 경기의 구체가 흐려진다는 데 있습니다.

스노보드 알파인은 코스 컨디션, 스타트 반응, 라인 선택, 그리고 순간의 균형이 복합적으로 작동합니다. 0.19초 차이의 패배는 “아깝다”로 끝나기보다, “무엇이 갈랐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때 선수의 성취가 더 정교하게 평가됩니다. 예컨대 결승에서의 미세한 실수인지, 상대의 스타트가 유리했는지, 혹은 코스 후반부의 라인 차이였는지 같은 분석이 있어야 ‘값진 은메달’이 단순 감탄을 넘어 납득 가능한 성취가 됩니다. 환호가 앞서면 이런 질문이 뒤로 밀립니다. 그리고 질문이 밀리면, 다음 대회의 준비도 감탄 위에 떠버립니다.

첫 메달의 진짜 가치는 ‘분위기’보다 ‘학습’에서 나옵니다. 이 은메달이 한국 스노보드 알파인 전체에 어떤 기술적 힌트를 남겼는지, 선수 개인의 루틴과 팀의 지원 체계가 어떻게 맞물렸는지, 그 구조가 확인될 때 첫 메달은 단순한 시작이 아니라 재현 가능한 성과가 됩니다.

400호의 숫자

원본 글은 이번 은메달이 동·하계를 통합한 ‘통산 400번째 메달’이라고 강조합니다. 숫자는 사람을 설득하는 데 매우 강력합니다. 특히 ‘400’처럼 둥글고 큰 숫자는 사건을 기념비로 바꿔버립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두 번째 의심이 생깁니다. 이 숫자는 어디까지 정확하며, 무엇을 포함하고 무엇을 제외한 결과인가 하는 점입니다.

올림픽 메달 집계는 겉보기엔 단순하지만, 기준에 따라 세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시점까지의 합산인지, 대회 중 실시간 반영인지, 정식 종목만 포함하는지, 공동 수상이나 동메달 2개가 나오는 종목의 계산 방식은 어떻게 처리하는지 같은 조건이 뒤에 숨어 있습니다. 숫자가 틀렸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숫자가 강한 설득력을 가질수록, 그 숫자가 만들어내는 ‘권위’는 확인의 과정을 요구합니다.

또 하나의 질문은, 설령 400호가 맞다 해도 그것이 선수 개인의 순간을 과도하게 흡수해버리지는 않는가입니다. 개인의 메달이 국가 통계의 ‘기념비’로 포장되는 순간, 선수는 개인의 이름보다 국가 숫자의 ‘증거’로 기능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은메달을 축하하면서도, 그 메달이 선수의 커리어와 삶에서 갖는 무게를 먼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숫자는 사람을 쉽게 정리하지만, 커리어는 숫자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한편으로 400호라는 프레임은 “우리는 강하다”는 결론으로 빠르게 뛰어갑니다. 그러나 강함은 누적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종목별 투자 편차와 시스템의 불균형을 가리기도 합니다. 동계 종목은 하계에 비해 기반이 얕고, 특정 종목에 성과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400호’의 기쁨이 진짜 힘이 되려면, 그 숫자를 축하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어떤 종목이 어떤 방식으로 성장했고, 어떤 종목은 왜 성장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숫자는 마침표가 아니라, 점검표가 될 때 더 건강합니다.

37세 베테랑의 서사

원본 글의 핵심 감정선은 37세라는 나이, 4번째 도전, 그리고 마침내 포디움에 올랐다는 ‘인간 승리’입니다. 스포츠에서 나이는 언제나 드라마의 재료가 됩니다. “정체되거나 하락할 수 있는 나이”라는 표현은 흔히 공감과 감탄을 끌어내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세 번째 의심이 생깁니다. 우리는 ‘나이’라는 프레임으로 무엇을 과장하고 무엇을 단순화하고 있는가라는 점입니다.

우선, 37세의 메달이 감동적인 이유는 단순히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그 나이까지 경쟁력을 유지하게 해준 훈련 방식과 회복 관리, 기술 축적, 그리고 심리적 안정이 복합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나이는 결과를 설명하는 단서일 수는 있어도, 원인 그 자체는 아닙니다. 그런데 서사가 강해지면 원인이 “의지”로만 축소될 수 있습니다. “굴하지 않았다” “불굴의 투혼” 같은 말은 듣기 좋지만, 그 문장만 남으면 성취의 기술적·과학적 토대가 지워집니다.

또한 ‘4전 5기’라는 표현은 도전과 실패를 아름답게 묶어주지만, 동시에 한 가지 현실을 가립니다. 올림픽 4번 출전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표 선발을 통과할 실력, 지속 가능한 스폰서와 지원, 부상 없이 버텨낼 의료·트레이닝 환경, 그리고 장기 계획을 운영할 협회와 팀의 선택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이 메달을 “한 사람의 의지”로만 읽으면, 오히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시스템의 중요성이 뒤로 밀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베테랑 서사가 가진 그림자도 있습니다. 베테랑의 성공이 커질수록,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젊은 세대는 아직 멀었다”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목의 미래는 베테랑의 위대함과 별개로, 신예의 유입과 성장 경로가 확보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베테랑의 메달은 종목을 살리는 불씨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 불씨에 의존해 문제를 미루는 핑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동을 느끼면서도 “이 성취가 다음 세대의 성장 구조로 이어지고 있는가”를 함께 점검해야 합니다.

결론

첫 메달의 환호는 분명 필요합니다. 분위기는 선수단을 움직이고, 팬을 연결하고, 종목의 존재감을 키웁니다. 하지만 환호가 성과의 구조를 가리면, 다음 환호는 우연에 기대게 됩니다. 0.19초 차이의 은메달이 남긴 것은 감동만이 아니라, 기술과 준비의 디테일입니다. 그 디테일을 붙잡을 때 첫 메달은 ‘기분 좋은 사건’이 아니라 ‘다시 만들 수 있는 성과’가 됩니다.

통산 400호라는 숫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숫자는 축하의 깃발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검증과 점검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집계했는지, 그 숫자가 어떤 역사적 흐름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숫자 뒤에 어떤 종목이 성장했고 어떤 종목이 고전했는지까지 살펴볼 때 숫자는 국가 자부심을 넘어 정책과 지원의 언어로 확장됩니다. “우리는 400호를 했다”에서 끝나면 기념품이지만, “400호를 가능하게 한 조건은 무엇이며, 다음 401호를 위해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로 이어지면 미래가 됩니다.

37세 베테랑의 서사는 가장 강력한 감정 자원입니다. 그러나 그 서사를 ‘의지’만으로 소비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베테랑의 성공이 증명하는 것은 단지 나이를 이겼다는 사실이 아니라, 고급 기술의 축적과 회복 관리, 심리적 안정, 그리고 장기적인 지원이 맞물릴 때 경쟁력이 유지된다는 현실입니다. 이 메달을 진짜로 기념하려면 “대단하다”에서 멈추기보다, 그 대단함을 가능하게 한 환경을 복제 가능한 시스템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원본 글이 언급한 이상호의 탈락 또한, 개인의 아쉬움으로만 끝내기엔 아깝습니다. 유력 후보의 조기 탈락은 늘 일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결과가 종목 전체의 두께를 시험한다는 점입니다. 한 명이 흔들려도 다른 누군가가 메달을 따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그 이유가 우연인지 구조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김상겸의 은메달이 ‘빈자리를 채웠다’는 문장으로 정리될 때, 우리는 동시에 “빈자리가 생겨도 흔들리지 않는 팀”을 만들 조건을 고민하게 됩니다.

결국 이 메달은 두 얼굴을 갖습니다. 하나는 당연히 축하해야 할 성취의 얼굴입니다. 다른 하나는 서사와 숫자에 기대어 현실을 단순화하려는 유혹의 얼굴입니다. 우리는 축하하면서도 의심해야 합니다. 첫 메달이라는 드라마가 남긴 학습을 붙잡고, 400호라는 숫자가 요구하는 검증을 수행하며, 37세 서사가 가르치는 시스템의 조건을 정리하는 것. 그 세 가지가 함께 갈 때, 은메달은 뉴스의 헤드라인을 넘어 한국 스노보드의 다음 장을 여는 실제 동력이 됩니다.

 

이미지 출저 - https://www.yna.co.kr/view/AKR20260209000200007?section=milano-cortina-2026/news&site=major_news01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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