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 ‘파이널 세트(Final Set, 원제: Cinquième set)’는 한때 프랑스 테니스의 희망으로 불렸으나 끝내 빛을 보지 못한 37세의 노장 선수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의 마지막 불꽃 같은 도전을 그린 강렬한 드라마입니다. 이 영화는 화려한 승리나 감성적인 가족애보다는 프로 스포츠의 잔혹한 현실, 미련과 집착에 사로잡힌 인간의 심리, 그리고 꿈과 현실 사이에서 파괴되어 가는 가족 관계를 극도로 현실적으로 파헤칩니다. 토마스가 복귀를 시도하는 무대는 프랑스 오픈의 성지인 롤랑 가로스(Roland-Garros). 이는 그가 19세에 좌절을 맛본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알렉스 루츠(Alex Lutz)가 연기한 토마스의 고독한 투쟁은, 단순한 스포츠 선수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욕망과 유한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스토리 전개: '천재'의 좌절과 마지막 몸부림
주인공 토마스 에디슨은 19세에 프랑스 오픈 준결승까지 진출하며 프랑스 테니스의 '차세대 스타'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진 후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37세가 된 현재, 그는 무릎 부상과 하락한 랭킹(245위)으로 인해 메이저 대회 초청은 꿈도 꾸지 못하며,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주니어 코치 일과 마이너 리그 경기를 전전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내 이브(Eve, 아나 지라르도 분) 역시 전직 테니스 선수였지만, 아들을 낳은 후 꿈을 접고 스포츠 매니지먼트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 부부는 토마스의 끝없는 미련 때문에 불안정한 삶을 이어갑니다.
토마스는 의사와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롤랑 가로스 예선전에 도전합니다. 톱 랭커만 누리는 특권이 사라진 그는,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스폰서 없이 자신의 장비를 구매하며, 한때 자신을 스타로 만들려 했던 어머니(주디스,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분)가 운영하는 클럽에서 홀로 훈련합니다. 이 과정은 프로 선수가 몰락하는 현실의 비참함과 고독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토마스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이지만, 그는 오직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집념 하나로 버텨냅니다.
예선전을 통과하며 토마스는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하고, 마침내 본선 1라운드에서 프랑스 테니스의 새로운 희망인 17세의 천재 선수 **데미안 토소(Damien Thosso)**와 맞붙게 됩니다. 데미안은 20년 전의 젊은 토마스를 연상시키는 건방짐과 천재성을 가졌습니다. 이 대결은 단순히 세대를 잇는 경기가 아니라, 현재의 좌절한 토마스가 과거의 빛나는 자신과, 그리고 자신의 유한성과 맞서는 숙명적인 대결이 됩니다. 영화는 이 마지막 경기를 통해 토마스의 모든 심리적, 신체적 고통을 폭발시키며 절정에 이릅니다.
나르시시즘과 가족: 꿈에 대한 집착이 낳은 균열
‘파이널 세트’는 토마스 에디슨의 도전을 영웅적인 컴백 스토리로 포장하는 대신, 자기애(나르시시즘)에 가까운 집착의 관점에서 분석합니다. 토마스의 끊임없는 도전을 지탱하는 것은 승리에 대한 열망을 넘어선,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스스로를 인정받으려는 강박입니다. 그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다른 삶을 시작하라는 주변의 충고를 단호히 거부하는데, 이는 곧 테니스 선수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토마스의 이러한 집착은 그의 가족, 특히 아내 이브와의 관계에 심각한 균열을 만듭니다. 이브는 토마스의 꿈을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했지만, 이제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토마스가 여전히 자신만을 위해 희생을 요구하는 현실에 지쳐갑니다. 영화는 이브의 복잡한 감정을 깊이 있게 다루며, 스포츠 영웅의 꿈 뒤에 숨겨진 배우자와 가족의 고독과 희생을 보여줍니다. 토마스의 성공이 곧 이브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그의 집착은 이브에게는 더욱 견디기 힘든 족쇄가 됩니다.
또한, 어머니 주디스와의 관계도 영화의 중요한 심리적 배경입니다. 주디스는 과거 토마스를 혹독하게 훈련시켜 천재로 만들었지만, 그의 실패를 목도한 후 아들을 밀어붙인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아들에게 '넌 챔피언이 될 마음가짐이 없었다'는 냉정한 비평을 서슴지 않는데, 이는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아들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애증의 발로입니다. 이처럼 토마스를 둘러싼 모든 인간관계는 그의 선수 수명과 성공 여부에 따라 냉정하게 재단되는 잔혹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선수 수명의 잔혹성: 몸의 배신과 시대의 교체
이 영화의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프로 스포츠 선수의 유한한 수명과 그 잔혹성에 대한 것입니다. 37세의 토마스는 20대 초반의 선수들과 달리 이미 닳고 닳은 몸을 이끌고 뜁니다. 영화는 그가 경기 중 겪는 통증, 만성적인 무릎 부상, 그리고 잦은 아이싱(냉찜질) 장면을 통해 선수들이 자신의 몸을 소모품처럼 다루는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의 몸은 더 이상 꿈을 좇을 수 없다고 비명을 지르지만, 토마스는 이를 억지로 무시하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합니다.
토마스가 젊은 데미안 토소와 맞서는 마지막 경기는 시대의 냉혹한 교체를 상징합니다. 젊음과 재능, 무한한 에너지를 가진 데미안 앞에서, 토마스의 노련함과 투지는 잠시 빛을 발하지만 결국 육체적인 한계에 부딪힙니다. 이 경기는 토마스에게 승패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바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영광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닫는 고통스러운 순간입니다. 영화는 이 경기를 단순히 승패로 끝내지 않고, 숨 막히는 클로즈업과 핸드헬드 카메라를 사용하여 토마스의 고통과 집념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합니다.
‘파이널 세트’의 마지막 장면은 토마스의 최종 결과를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고 끝을 맺습니다. 이 열린 결말은 토마스의 투쟁이 승리나 패배라는 이분법을 초월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가 모든 것을 걸고 마지막으로 코트에 섰다는 사실—그것이 바로 그의 존재 이유이자 마지막 성취였습니다.
토마스의 고독한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파이널 세트’는 승자독식의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 화려한 우승자가 아닌 잊혀 가는 한 개인의 치열한 삶을 조명합니다. 토마스 에디슨의 마지막 세트는 겉으로는 테니스 경기였지만, 그 속은 인생이라는 코트에서 자신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한 남자의 처절한 내면 전쟁이었습니다. 영화가 결과를 보여주지 않고 끝맺는 것처럼, 토마스의 고독한 투쟁은 경기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그의 내면에서 계속되고 있음을 암시하며, 관객에게 가장 씁쓸하지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