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개봉한 영화 **‘펠레: 전설의 탄생(Pelé: Birth of a Legend)’**은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 에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Edson Arantes do Nascimento), 즉 펠레의 어린 시절부터 17세에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전기 영화입니다. 제프 짐발리스트(Jeff Zimbalist)와 마이클 짐발리스트(Michael Zimbalist) 형제가 공동 연출한 이 작품은 펠레의 압도적인 재능과 불굴의 의지뿐만 아니라, **브라질 축구의 독특한 정신인 '징가(Ginga)'**를 탐구하며, 한 소년이 어떻게 국가적 자긍심을 상징하는 존재로 성장했는지를 감동적으로 그려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영웅 서사를 넘어, 1950년대 브라질 사회의 계층 문제와 축구를 통한 국가 정체성의 형성 과정을 섬세하게 조명합니다.
소년의 꿈과 좌절: 가난과 축구의 운명적 만남
영화는 1940년대 브라질의 빈민가에서 시작됩니다. 주인공 **'지쿠(Dico)'**라 불리던 어린 펠레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동지뉴(Dondinho)로부터 축구에 대한 열정과 꿈을 물려받습니다. 아버지가 부상으로 축구 경력을 중단하게 되자, 펠레는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구두닦이 일을 하며 꿈을 이어갑니다. 이 시기, 펠레는 정식 코치가 아닌 길거리 축구를 통해 **브라질 고유의 축구 스타일인 '징가'**를 자연스레 체득합니다. '징가'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자유롭고 즉흥적이며 리듬감이 넘치는 브라질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반영한 축구 정신입니다.
펠레의 축구 인생에 가장 큰 좌절을 안긴 사건은 1950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의 패배, 일명 **'마라카낭의 비극(Maracanazo)'**입니다. 브라질이 우승 문턱에서 우루과이에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하자, 온 국민이 슬픔에 잠기고, 어린 펠레는 울고 있는 아버지에게 **“내가 브라질을 위해 월드컵 우승을 선물하겠다”**는 운명적인 약속을 합니다. 이 약속은 펠레의 어린 시절 꿈을 단순한 개인의 성취가 아닌, 국가적 사명감으로 승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이 영화는 펠레의 좌절과 열망을 1950년대 브라질의 집단적인 상실감과 희망과 연결하여, 그의 성장을 더욱 극적으로 만듭니다.
펠레는 산토스 FC 유소년 팀에 입단하여 공식적인 축구 교육을 받게 되지만, 그의 길거리 축구 스타일, 즉흥적인 징가는 유럽식의 정형화된 전술과 훈련을 선호하던 코치진으로부터 끊임없이 비판받고 억압받습니다. 이 갈등은 영화의 핵심적인 드라마적 축을 형성하며, 자유로운 브라질 정신 대(對) 보수적인 유럽 축구 문화라는 문화적 충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징가' 정신: 축구를 넘어선 브라질의 정체성
‘펠레: 전설의 탄생’은 **'징가'**라는 개념을 펠레의 성공과 브라질 축구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핵심 코드로 사용합니다. 징가는 아프리카 노예들의 문화에서 유래된 브라질의 독특한 무술(카포에이라)과 리듬이 결합된 움직임으로, 예측 불가능하고 리듬감 있는 펠레의 플레이 스타일을 대변합니다. 영화 속에서 코치들은 징가를 버리고 유럽식의 규율적인 플레이를 할 것을 강요하지만, 펠레는 결국 자신의 본능과 징가를 통해 가장 창의적이고 강력한 축구를 만들어냅니다.
징가는 펠레에게 단순한 기술이 아닌, 가난과 억압 속에서도 유머와 자유를 잃지 않으려는 브라질 국민들의 정신을 상징합니다. 펠레가 징가를 되찾고 자신의 플레이를 완성하는 과정은, 브라질이 외세의 잣대나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을 찾고 확립하는 과정과 일치합니다. 펠레의 성공은 곧 브라질 문화의 승리이자, 인종과 계층을 초월한 국민 통합의 상징이 됩니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 출전한 펠레는 부상과 긴장감 속에서도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준결승과 결승전에서 연이어 득점을 올립니다. 그의 득점은 예술적인 드리블과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 즉 징가의 정신이 깃든 플레이였습니다. 특히 결승전에서 스웨덴을 상대로 보여준 환상적인 볼 컨트롤과 발리슛은 징가가 세계 축구의 정점에 설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브라질 축구의 정체성: 월드컵 우승과 새로운 시대
17세의 펠레가 이끈 브라질의 1958년 월드컵 우승은 브라질 축구 역사뿐만 아니라, 브라질이라는 나라 자체의 정체성에 거대한 전환점을 가져왔습니다. 이 우승 전까지 브라질은 패배감과 열등감에 시달렸지만, 펠레를 필두로 한 유색인종 선수들이 주축이 된 팀이 세계를 제패함으로써, 브라질 국민들은 인종적 다양성과 문화적 독창성에 대한 자긍심을 얻었습니다. 이 우승은 브라질 사회에 긍정적인 자기 인식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사회적 기적이었습니다.
영화는 펠레의 성공을 통해 축구가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스포츠가 어떻게 사회적 계층과 인종의 장벽을 허물 수 있는지를 강조합니다. 빈민가 출신의 흑인 소년이 세계적인 영웅이 되는 과정은, 당시 브라질 사회의 빈곤과 차별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으려 했던 모든 이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펠레의 이야기는 재능과 노력, 그리고 고유한 문화적 자긍심이 결합될 때 불가능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 영화는 펠레라는 위대한 축구 선수의 탄생을 기록하면서, 그 성공이 단순한 개인의 업적이 아니라 브라질이라는 나라와 문화 전체가 함께 이룬 집단적인 성취였음을 아름답게 기념합니다. 펠레가 월드컵 우승 후 아버지에게 달려가 안기는 모습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가족과 국가의 명예를 회복한 인간적인 승리를 상징하며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징가의 정신으로, 세계를 발아래 두다
‘펠레: 전설의 탄생’은 펠레가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고 '징가'의 정신을 되찾아 세계 무대에서 꽃 피우는 과정을 그린, 짜릿하고 감동적인 서사입니다. 17세의 소년이 겪은 좌절과 고난은 그를 무너뜨리지 않고, 오히려 그를 브라질의 영원한 영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과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그것을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세우는 용기가 가장 위대한 성취임을 깨닫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