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플라잉 버드》(High Flying Bird, 2019)는 전통적인 스포츠 영화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코트 위의 경기보다, 코트 밖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역학과 산업 구조에 더 깊은 관심을 둡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특유의 실험적이고 미니멀한 연출 속에서, NBA 신인 에이전트와 선수, 구단, 리그 사이의 갈등과 협상 과정을 중심으로 스포츠가 자본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농구 이야기가 아니라, 스포츠 산업의 본질—즉, 누가 통제하고, 누가 착취당하며, 진정한 권력은 어디에 있는가—를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본문에서는 ‘노동과 권력’, ‘리그의 정치’, ‘스포츠 산업 구조’라는 세 가지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 작품의 메시지를 해석해보겠습니다.
노동과 권력 – 선수는 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가
《하이 플라잉 버드》는 NBA가 직면한 ‘리그 락아웃’ 상황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리그와 선수노조가 수익 분배에 대해 합의하지 못하면서 시즌이 중단되고, 수많은 선수들이 수입원을 잃고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왜 경기의 주체인 선수들이 자신들의 노동 조건을 통제하지 못하는가?"
주인공 레이 버크(안드레 홀랜드 분)는 유능한 스포츠 에이전트로, 신인 스타 에릭 스콧을 관리하며 리그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그의 위치를 지키려 애씁니다. 레이는 농구라는 스포츠가 구단주와 리그에 의해 통제되고, 선수들은 그 안에서 ‘몸값 높은 자산’처럼 거래되고 있음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는 경기의 주체는 선수이며,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파워를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영화는 ‘선수’라는 존재를 단순한 스타가 아닌 ‘노동자’로 바라보며, 스포츠 산업 안에서 벌어지는 노동 착취 구조를 드러냅니다. 고액 연봉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자율적인 결정권이 없으며, 리그와 에이전시, 미디어에 의해 철저히 관리되는 구조 속에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실제로도 많은 프로 스포츠에서 나타나는 현실이며, 《하이 플라잉 버드》는 이를 비판적으로 재조명합니다.
레이는 이러한 구조를 해체하고, 선수들이 스스로를 브랜드화하고, 리그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팬들과 직접 연결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합니다. 그의 전략은 단순한 협상 테크닉이 아니라, 기존 권력 구조를 바꾸기 위한 정치적 행동입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스포츠가 더 이상 단순한 경기장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가 얽힌 복합 구조임을 보여줍니다.
리그의 정치 – 통제하는 자와 통제받는 자
영화는 리그가 단순한 스포츠 조직이 아닌, 복잡한 정치적 기구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NBA는 규칙을 만들고, 경기 일정을 조율하며, 마케팅과 방송권을 통제하는 권력의 중심입니다. 동시에, 리그는 선수들의 개별 행동이나 발언을 규제하고, 이미지 관리에 있어 철저하게 브랜드를 우선합니다. 이런 방식은 실제 스포츠 세계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나며, 선수의 정체성과 행동 자유를 제약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레이는 이러한 리그 중심 구조에 반기를 듭니다. 그는 에릭이 SNS와 스트리밍을 통해 리그 외부에서 자신의 플레이를 공개하고, 팬과 직접 연결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상합니다. 이는 리그를 우회해 선수가 스스로 콘텐츠의 주체가 되고,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게 하는 시도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현대 미디어 환경 속에서 매우 현실적인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의 플랫폼은 스포츠 스타들이 전통적 미디어 없이도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며, 레이의 전략은 바로 그 흐름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는 리그의 승인 없이도 ‘경기’를 만들 수 있으며, ‘콘텐츠’로써 농구를 유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장면들은 스포츠가 더 이상 경기력 중심의 세계가 아니라, 콘텐츠 기반의 미디어 산업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산업 구조 속에서 진짜 권력은 누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이 플라잉 버드》는 리그가 선수를 소유하려는 방식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며, 새로운 시대의 스포츠는 오히려 선수 개인의 미디어 파워로 재편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합니다.
스포츠산업구조 – 자본, 미디어, 문화의 교차점
이 영화는 스포츠를 단순한 경기나 오락이 아닌, 자본과 미디어, 문화가 만나는 ‘산업’으로 바라봅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모든 구조가 흑인 청년들을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에릭 스콧을 비롯한 많은 선수들은 흑인 사회에서 성장했으며, 그들의 재능과 스토리는 백인 구단주들과 글로벌 미디어 기업에 의해 상품화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착취 구조를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선수들은 최고의 운동 능력을 가졌지만, 그들의 커리어는 전적으로 계약과 규정, 리그의 정치적 결정에 의해 좌우됩니다. 반면 구단주와 미디어는 그들의 스토리를 가공하여 돈을 벌고, 그 이익은 불균형하게 배분됩니다.
레이는 이 구조를 해체하려 합니다. 그는 "게임의 룰을 바꾸는 자가 미래를 만든다"고 말하며, 스포츠를 다시 ‘선수 중심’으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을 주도합니다. 이는 단순한 에이전트의 전략이 아니라, 스포츠 산업에 대한 근본적인 전복 시도이며, 그 의미는 매우 정치적입니다.
《하이 플라잉 버드》는 스포츠 산업이 인종, 계급, 자본, 미디어의 복합적 교차점임을 보여주며, 단순히 승리와 패배를 넘은 구조적 메시지를 전합니다. 선수 한 명의 커리어는 단지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윤리와 구조에 의해 좌우됩니다. 영화는 이 사실을 날카롭게 해부하며, 스포츠가 가진 정치성과 산업적 본질을 드러냅니다.
《하이 플라잉 버드》는 스포츠를 이야기하면서도, 경기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이례적인 영화입니다. 그 대신 이 작품은 스포츠의 이면, 즉 자본과 권력, 정치적 구조, 그리고 노동의 가치에 대해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레이 버크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는 기존 스포츠 산업의 모순과 변화 가능성을 바라보게 되며, 더 나아가 '누가 진짜 경기를 지배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 영화는 스포츠의 미래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묻는 현대적인 선언이자, 구조적 통찰이 돋보이는 수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