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디오 판독 시스템(VAR)은 처음 등장했을 때 **‘완벽한 공정성의 시작’**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스포츠계에 도입되었습니다. 느린 화면이 심판의 실수를 줄여주고, 억울한 판정으로 인한 불필요한 논란을 해소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실제로 VAR은 오심의 빈도를 줄이는 데 기여했고, 명백한 사실(Fact)을 판별하는 데 탁월한 효율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VAR 도입 5년이 지난 지금, 경기장과 관중석에서는 오히려 역설적인 질문이 제기됩니다. “우리는 정말 더 공정해졌는가?”
VAR은 기술적으로는 **‘사실’**을 찾아내지만, 스포츠는 언제나 ‘맥락’ 속에서 존재합니다. 슬로모션으로 본 파울 장면은 명확한 증거로 보이지만, 경기의 흐름과 선수들의 의도 속에서는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기술은 인간의 행동을 수학적인 좌표와 궤적으로 분해하지만, 그 행동에 담긴 의도와 심리적 결은 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딜레마는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축구의 ‘핸드볼’ 판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AI가 팔의 위치를 인식하고, 볼의 궤적을 계산해도, 그것이 **‘의도된 동작’**이었는지 아닌지는 여전히 인간 심판의 해석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과 맥락 사이의 딜레마: 인간의 해석 영역
VAR은 스포츠를 **‘판단의 예술’**에서 **‘증명의 과학’**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전의 심판 판정은 순간적인 직감, 경험, 그리고 경기 전체의 흐름을 고려한 종합적인 예술에 가까웠습니다. 심판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의 판정에는 인간적인 맥락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VAR은 이 모든 맥락을 제거하고 오직 **‘증거’**만을 요구합니다. 기술은 우리에게 **명확성(Clarity)**을 제공했지만, 이 명확성은 때로 감정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VAR이 도입된 후, 관중석의 모습은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 골이 터져도 팬들은 즉시 환호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화면을 본다. 손에 땀을 쥐고 기다린다. **‘승리의 감정’**이 시스템 검증이라는 차가운 절차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허락됩니다. 기술이 객관적인 공정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즉각적 감동’**을 지워버린 것입니다. 스포츠의 매력 중 하나였던 불완전함 속에서의 폭발적인 환희가 차단된 것입니다. 이처럼 VAR은 논리적으로는 공정할지 모르나, 인간이 스포츠에서 찾는 비이성적인 열정과 카타르시스를 억압하는 아이러니를 낳았습니다.
기술의 명확성과 인간의 해석 영역: 복잡한 정의감
VAR은 심판의 오심을 줄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스포츠의 철학적 영역까지 침범하지는 못했습니다. 인간의 정의감은 계산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오심조차 스포츠의 일부였으며, 그 불완전함 속에서 승리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완벽한 공정성이 인간을 완전히 위로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결과의 **‘정확성’**만을 원했다면 AI에게 전권을 넘겨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과의 정확성을 넘어선 ‘감정의 정의감’, 즉 **“이 승리가 인간적으로 납득되는가”**라는 **공감(Sympathy)**을 원합니다.
AI가 아무리 팔의 각도와 공의 속도를 연산해도, 그 결과를 최종적으로 해석하고 선포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 심판입니다. VAR은 도구일 뿐, 인간의 의도와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을 복제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VAR은 심판의 보조 수단이지, 심판을 대체하는 **‘궁극적인 판결자’**가 될 수 없습니다. VAR이라는 알고리즘은 기술적 증거를 제시하지만, 그 증거에 의미를 부여하고 정의를 완성하는 것은 인간의 몫으로 남습니다.
즉각적 감동의 희생: 관중의 심판
결국 스포츠의 심판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관중의 심장 속에서 내려지는 판결입니다. VAR은 판정의 정확도를 높였지만, 그 대가로 즉각적인 감동을 희생시켰습니다. 기술은 우리에게 **‘차가운 사실’**을 제시했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뜨거운 감정’**을 잠시 유보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딜레마는 스포츠가 궁극적으로 기술적 경연이 아닌, 인간의 감정을 공유하는 서사라는 점을 재확인시켜 줍니다. VAR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공감의 연산은 오직 인간의 마음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기술은 판정을 돕는 보이지 않는 눈이지만, 그 판정을 **‘공정하다’**고 납득하는 최종적인 심판은 여전히 관중의 심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