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스포츠 하이라이트의 선정은 방송사의 베테랑 PD나 해설자의 경험과 감각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이 장면이 오늘의 하이라이트다”**라는 인간적인 판단이 시청자들에게 제공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리즘이 이 역할을 대신합니다. 팬의 시청 패턴, 댓글 폭발 구간, 반복 재생된 순간, 그리고 공유된 횟수까지, 이 모든 디지털 데이터가 모여 **“가장 감정이 뜨거웠던 장면”**을 수학적으로 선정합니다.
이제 하이라이트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취향’을 예측해 제공합니다. 이로 인해 팬의 취향은 주관적인 감정이나 선호가 아니라, 데이터로 측정 가능한 패턴으로 환원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팬들에게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며 편리성을 극대화하지만, 그 이면에는 취향의 자동화라는 근본적인 위험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점점 **“내가 좋아한 장면”**이 아니라, **“기계가 내가 좋아할 거라고 판단한 장면”**만을 보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취향의 데이터화: 알고리즘의 거울
알고리즘 기반의 하이라이트 추천 시스템은 팬 개개인의 선호도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파악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선수의 플레이를 반복 시청하거나, 수비 상황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팬에게는 해당 선수의 수비 하이라이트나 유사한 패턴의 수비 장면을 우선적으로 노출합니다. 이러한 개인 맞춤화는 시청자의 만족도를 높이고 플랫폼 체류 시간을 극대화하는 효율성의 정점입니다.
문제는 이 효율성이 ‘알고리즘의 거울’ 효과를 낳는다는 점입니다. 알고리즘은 팬의 과거 행동 패턴을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에, 팬들은 자신이 이미 좋아하는 것만을 계속해서 보게 됩니다. 이로 인해 취향의 확장성은 사라지고, 새로운 감정이나 예상치 못한 재미를 발견할 기회가 줄어듭니다. 하이라이트가 데이터로 측정 가능해지는 순간, 팬의 감정은 ‘패턴’ 속에 갇히게 되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기술은 팬에게 맞춰진 시대지만, 오히려 팬은 기술의 취향 속에 갇혀가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예측과 발견의 딜레마: 우연한 감동의 소멸
알고리즘의 효율성은 스포츠의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인 **‘우연히 발견한 감동’**을 지웁니다.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변수의 예술입니다. 경기 중 예상치 못한 선수의 헌신적인 수비, 혹은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의 인생 골과 같은 장면은 시청자에게 강력하고 즉각적인 감동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과거의 조회수나 반응 데이터가 낮은 이러한 **'예상 밖의 장면'**을 하이라이트로 추천할 확률이 낮습니다.
AI는 '뜨거웠던 장면'을 효율적으로 골라내지만, **'앞으로 뜨거워질 잠재력을 가진 장면'**이나 **'감동적이지만 대중의 반응이 늦게 오는 장면'**은 놓칩니다. 스포츠의 가치는 단순히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한 장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노력, 희생,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선수의 눈물 속에도 있습니다. 자동 추천 시스템은 이러한 우연성과 비효율성의 영역을 제거함으로써, 팬 경험을 극대화하려 하지만, 동시에 스포츠가 가진 감정의 깊이를 희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기술의 거품과 인간적인 선택의 가치
이러한 역설은 앞으로 팬 경험의 핵심 과제가 될 것입니다. 팬의 감정을 데이터로 측정하는 기술은 구단 경영에 필수적이지만, 그 데이터가 팬심의 본질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기술이 하이라이트 콘텐츠를 만들 때, 구단은 의도적으로 알고리즘이 추천하지 않은 '인간적인' 장면을 포함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희생적인 수비, 부상 투혼, 그리고 동료를 향한 격려와 같은, 조회수는 낮더라도 팀의 가치를 담은 장면을 의도적으로 부각해야 합니다.
결국, 팬들은 효율적으로 포장된 하이라이트 속에서도 인간적인 선택의 가치를 찾습니다. 하이라이트의 선정은 단순한 데이터 분석을 넘어, 구단이 팬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핵심 가치와 철학을 담는 리더십의 영역이 되어야 합니다. 기술은 수단일 뿐이며, 그 기술을 통해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인간적인 판단이 스포츠 콘텐츠의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