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은 보통 ‘도망칠 곳 없는 축제’처럼 묘사된다. 전 세계가 몰려들고, 도시가 화려하게 단장되고, 경기장 주변은 한동안 다른 시간대에 사는 것처럼 들뜬다. 그런데 이번 이야기는 그 축제의 표면 아래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조금 불편하게 보여준다. 16년 동안 도망 다니던 슬로바키아 출신 수배자가 자국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려고 밀라노에 잠입했다가 체포됐다는 소식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지만, 웃고 끝내기엔 질문이 남는다. 그는 왜 그 순간에 ‘잡힐 것’을 알면서도 들어왔을까. 그리고 그는 정말 ‘실수’로 잡힌 걸까, 아니면 애초에 이런 대형 이벤트에서 도피가 가능한 시대가 끝난 걸까.
기사에 따르면 이 남성은 2010년 절도 사건으로 수배 상태였고, 밀라노 외곽 캠핑장에 숙박 등록을 하는 과정에서 ‘범죄자 자동 경고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위치가 드러났다고 한다. 경찰은 출동해 추적 끝에 검거했다. 그가 보려던 경기는 슬로바키아와 핀란드의 아이스하키 경기였고, 정작 슬로바키아가 4-1로 승리하는 장면도 보지 못한 채 교도소로 이송됐다. 이 사건은 개인의 어리석음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디테일이 너무 상징적이다. 특히 ‘숙박 등록’과 ‘자동 경고 시스템’이라는 단어는, 오늘날 우리가 이벤트를 즐기는 방식이 어떤 사회적 장치 위에서 가능해지는지 되묻게 만든다.
응원하러 왔다가 잡힌 아이러니
이 사건의 첫 번째 아이러니는 ‘동기’다. 도망자라면 보통 눈에 띄지 않는 곳을 택한다. 그런데 그는 올림픽이라는, 가장 눈에 띄는 무대를 향했다. 그것도 범행을 위해서가 아니라 ‘응원’이라는 이유로. 여기서 의심이 생긴다. 정말로 그는 단순히 스포츠가 너무 보고 싶어서 위험을 감수한 걸까. 아니면 오랜 도피가 만들어낸 어떤 착각, 즉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무감각이 쌓인 결과였을까.
올림픽은 사람을 ‘평범한 시민’으로 위장시키기에 좋은 공간이기도 하다. 국적이 다른 관광객이 넘쳐나고, 낯선 언어가 섞이며, 축제의 혼잡이 개인을 익명 속으로 숨겨준다. 도망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 익명성이 방패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올림픽은 그 익명성을 상쇄하는 공간이다. 대형 이벤트는 안전을 이유로 더 촘촘한 통제를 동원한다. 공항과 역, 경기장 주변, 숙박시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이동은 평소보다 더 많은 ‘기록’을 남긴다. 결국 그는 ‘관중’으로 섞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관중이기 위해 필요한 절차’에서 걸렸다. 축제에 들어가려면 티켓만 필요한 게 아니라, 수많은 데이터 절차를 통과해야 하는 시대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시간’이다. 16년은 짧지 않다. 그 긴 시간 동안 버텼다면, 그는 숨어 지내는 기술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캠핑장 숙박 등록이라는 일상적 행위에서 덜미가 잡혔다. 이는 도피의 기술이 무뎌졌다기보다, 사회의 기술이 바뀌었다는 쪽이 더 설득력 있다. 예전의 도피는 ‘사람의 눈’을 피하는 게임이었다면, 지금의 도피는 ‘시스템의 감지’를 피하는 게임이 됐다. 그리고 후자는 훨씬 어렵다.
‘자동 경고 시스템’이 바꾼 도피의 규칙
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는 ‘범죄자 자동 경고 시스템’이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시대의 방향이 보인다. 개인을 찾는 방식이 수배 전단이나 현장 제보 중심에서, 데이터 기반의 자동 탐지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숙박 등록 과정에서 시스템이 즉시 반응했다는 것은, 사람의 기억과 직감이 아니라 데이터 매칭이 체포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의미다.
여기서 의심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첫째, 이런 시스템은 분명 안전에 기여한다. 수배자를 빠르게 발견하고, 잠재적 위험을 줄인다. 특히 올림픽 같은 대형 행사에서 안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군중이 모이는 곳에서는 작은 사건이 큰 사고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화된 경고 체계는 ‘눈에 띄지 않는 위험’을 선제적으로 걸러낼 수 있다.
하지만 둘째, 바로 그 자동화가 새로운 문제를 만든다. ‘자동 경고’는 자동으로 누군가를 ‘의심의 대상’으로 분류한다. 그 분류가 정확할 때는 정의처럼 보이지만, 시스템의 오작동이나 데이터 오류가 있을 때는 누군가의 일상을 순식간에 위협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이 사건에서는 수배자가 실제로 존재했기에 정당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기 쉬운 건, 이런 시스템이 확대될수록 ‘정당한 체포’가 아니라 ‘정당해 보이는 감시’가 일상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숙박 등록은 원래 안전과 관리의 목적을 가진 절차다. 하지만 그 절차가 사실상 ‘신원 확인의 관문’으로 바뀌면, 개인은 숙박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국가의 감시 인프라를 통과하게 된다. 올림픽 기간에는 이런 관문이 더 많이 생긴다. 경기장에 들어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숙소에 체크인하고, 때로는 팬존에 들어가는 것까지, ‘참여’는 곧 ‘기록’이 된다. 우리는 편리함과 안전을 얻지만, 동시에 이동의 자유가 점점 더 많은 조건을 달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한 번 더 의심이 생긴다. 시스템이 작동한 시점은 ‘캠핑장 등록’이었다. 즉, 그는 경기장 앞에서 잡힌 게 아니라, 생활의 문턱에서 잡혔다. 이것은 대형 이벤트의 안전망이 경기장 주변만이 아니라 도시 전체로 확장된다는 신호처럼 읽힌다. 올림픽이 열리는 도시는 ‘축제 도시’이면서 동시에 ‘임시적인 고보 안 도시’가 된다. 그 상태가 행사 이후 얼마나 원상 복구되는지, 혹은 그대로 유지되어 다른 목적에 사용되는지에 대한 질문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안전과 자유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이 사건을 ‘도망자 잡혔다’라는 단순한 뉴스로만 읽으면, 결론은 쉽게 끝난다.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았다, 정의가 실현됐다. 그러나 올림픽이라는 배경이 붙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올림픽은 국가가 도시를 재설계하고, 통제와 편의를 동시에 강화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그 특별한 시간에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은 개인의 운명뿐 아니라 제도의 방향을 드러내는 사례가 된다.
우리가 ‘안전’을 원할 때, 종종 ‘자유의 비용’을 계산하지 않는다. 안전 장치가 늘어날수록 시민의 삶은 더 안정적이 될 수 있다. 동시에 그 장치는 언제든 다른 목적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품는다. 오늘은 수배자를 잡는 데 쓰였지만, 내일은 훨씬 넓은 범위의 행동을 관리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이런 질문이 불편하다고 해서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때, 안전은 권력이 아니라 합의로 운영된다.
또한 이 사건은 ‘감시’가 반드시 카메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감시를 떠올릴 때 CCTV를 먼저 생각하지만, 실제로 더 강력한 감시는 ‘연결된 시스템’에서 온다. 숙박 등록 데이터, 출입국 기록, 교통 이용 정보, 행사 출입 기록 같은 조각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될 때, 개인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추적 가능해진다. 도망자는 그 추적 가능성을 이미 알고도 들어왔을지 모른다. 혹은 그 추적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과소평가했을지 모른다. 어떤 쪽이든 중요한 건, 이제 도시는 사람의 눈보다 시스템의 손이 더 길어졌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결말이 ‘경기를 못 봤다’로 마무리되는 방식은 묘하게 많은 것을 함축한다. 그는 스포츠를 보러 왔지만, 스포츠가 열리는 도시의 질서에 의해 멈췄다. 축제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듯하지만, 실은 여러 기준과 절차를 통과한 사람들에게만 열리는 구조다. 그 기준이 법적으로 정당하더라도, 그 구조가 점점 더 촘촘해질수록 ‘참여의 조건’은 무거워진다. 우리는 그 무게를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고, 때로는 아무 의심 없이 익숙해진다.
결론
내가 이 사건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은 체포 자체가 아니라, 체포가 이뤄진 방식이다. 총격전도, 거대한 추격전도 아니었다. 캠핑장 숙박 등록이라는 평범한 절차에서 시스템이 먼저 반응했고, 그 반응이 곧 체포로 이어졌다. 여기에는 오늘날 사회가 가진 힘의 형태가 드러난다. 개인의 일상을 통과하는 작은 문들이 사실은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고, 그 네트워크가 필요할 때는 매우 정교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수배자가 잡힌 결과는 상식적으로 납득된다. 다만 나는 이 ‘납득’이 우리를 너무 빨리 안심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같은 구조는 언제든 다른 대상을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을 위해 만든 시스템이 시민의 자유를 잠식하지 않으려면, 시스템의 범위와 사용 목적이 계속 점검되어야 한다. 자동 경고가 언제, 어떤 기준으로, 어떤 절차를 통해 작동하는지 투명해야 하고, 오류가 났을 때 개인이 보호받을 장치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정의로운 체포’의 이야기만 소비한 채, 그 뒤에서 커지는 ‘조건부 시민성’을 놓치게 된다.
올림픽은 축제이면서 동시에 도시의 통제 실험장이 되곤 한다. 그래서 올림픽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늘 두 겹으로 읽힌다. 한 겹은 눈앞의 사건이고, 다른 한 겹은 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시스템이다. 도망자가 응원하러 왔다가 잡힌 이야기는 흥미로운 험담으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의 핵심이 ‘우스운 실수’가 아니라, 우리가 즐기는 축제가 어떤 질서 위에서 성립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본다. 안전은 필요하다. 다만 안전이 강해질수록, 자유의 경계가 어디까지 밀려나는지도 함께 바라봐야 한다. 그 경계를 의심하는 습관이 사라지는 순간, 축제는 가장 먼저 우리를 감시하는 무대로 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