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자담배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솔직히 마음이 느슨해졌다. 연기가 거의 안 보이고 냄새도 약하니까, 적어도 생활에 남는 흔적은 덜하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도 비슷한 말을 많이 했다. 옷에 냄새가 덜 밴다, 가족 눈치를 덜 본다, 방 안에 찌든 느낌이 없다. 이런 이야기는 반복될수록 설득력이 생긴다. 그리고 그 설득력은 어느 순간 ‘안전’이라는 단어로 슬쩍 바뀐다. 나는 그 바뀌는 과정을 의심하지 않았다. 불편함이 줄어든 만큼 위험도 줄었을 거라고, 너무 자연스럽게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런데 가까운 친구 한 명이 전자담배를 꽤 오래 사용하다가 정기 검진에서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 본인은 특별한 증상이 심하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폐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소견을 받았다고 했다. 의사는 단정적으로 “이것 때문에 그렇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생활 습관 전반을 점검해 보는 게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설명했다고 한다. 친구는 그 말을 듣고 꽤 충격을 받았다. 냄새도 덜하고 연기도 없으니 예전보다는 괜찮을 거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 역시 마음 한구석이 뜨끔했다. ‘괜찮을 거야’라는 확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따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일을 통해 느낀 건 단순히 전자담배가 위험하다는 결론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전자담배를 둘러싼 믿음이 얼마나 쉽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그 믿음이 습관을 얼마나 촘촘하게 키울 수 있는지에 더 집중하게 됐다. 공포를 만들기보다, 내 생활에서 무엇이 바뀌고 있는지부터 의심해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1. 전자담배 오해는 정보 부족보다 ‘불편함이 줄었다’는 감각에서 더 쉽게 굳어졌다
전자담배 오해는 생각보다 아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나는 “연초보다 덜 티 나니까 덜 해롭겠지” 같은 생각을 한 번도 ‘오해’라고 느낀 적이 없다. 그건 누가 강요한 결론이 아니라, 내가 경험으로 만들어낸 결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냄새가 약하면 타인에게 덜 미안하고, 연기가 덜 보이면 스스로도 죄책감이 덜해진다. 문제는 그 ‘덜’이라는 감각이 안전을 의미하는 것처럼 착각을 만든다는 점이다.
친구도 똑같았다. 전자담배로 바꾸고 나서는 주변의 눈치가 줄었고, 공간에 남는 흔적도 덜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 편안함이 쌓이면서 경계가 낮아졌다. “그래도 연초보단 낫잖아”라는 문장이 습관처럼 나왔고, 그 문장이 나올수록 행동은 더 가벼워졌다. 나는 그 과정이 무섭다고 느꼈다. 누군가를 겁주기 위한 무서움이 아니라, ‘경계가 사라지는 속도’가 무섭다는 뜻이다.
전자담배 오해는 결국 내 일상 감각과 맞물려 굳어진다. 냄새가 줄면 ‘문제도 줄었다’고 생각하기 쉽고, 눈에 보이는 연기가 줄면 ‘내 몸에 들어가는 것도 줄었다’고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친구의 사례를 들으면서 나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게 됐다. 내 생활에서 불편함이 줄어들수록, 사용은 더 쉽게 늘어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늘어난 사용을 나는 “대수롭지 않게” 느끼게 된다는 것. 오해는 지식의 부족보다, 이런 감각의 완충에서 더 잘 자란다는 걸 그때 인정하게 됐다.
2. 사용 빈도는 줄었다고 믿었지만 생활관리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늘어나는 날이 많았다
생활관리 관점에서 친구가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사용 빈도였다. 전자담배는 연초처럼 ‘피우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거의 없다. 라이터도 필요 없고, 밖으로 나갈 이유도 줄어든다. 나는 예전에는 담배를 피우러 자리에서 일어나는 행위 자체가 작은 브레이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이 번거롭기 때문에 자제되는 면도 있다. 그런데 전자담배는 그 브레이크가 훨씬 약하다.
친구는 처음에 “연초 끊었으니 줄었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사용 시간을 메모장에 적어보니 느낌과 현실이 달랐다. 업무 중간에 한 번, 이동 중에 한 번, 잠들기 전 한 번, 스트레스 받을 때 한 번. 이런 ‘자잘한 한 번’이 모여 하루를 채웠고, 결국 사용 빈도는 줄지 않았거나 오히려 늘어 있었다고 했다. 나는 이 부분이 핵심이라고 느꼈다. 전자담배를 둘러싼 논쟁에서 빠지기 쉬운 건, ‘유해성’만 붙들고 생활의 변화를 놓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내 몸에 영향을 주는 건 하루에 몇 번, 어떤 상황에서, 어떤 리듬으로 반복되는지 같은 생활의 패턴일 때가 많다.
친구는 의사의 말을 계기로 자신을 나무라기보다, 생활관리의 순서를 바꾸기로 했다. 사용을 무조건 끊겠다고 선언하면 오히려 더 집착하게 되는 날이 있었고, 실패했을 때 자책이 커졌다고 했다. 그래서 “언제 손이 가는지부터 보자”로 방향을 틀었다.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발견이 있었다. 피로가 쌓인 날, 잠이 부족한 날, 카페인을 늦게까지 마신 날에 사용 빈도가 올라갔다. 결국 전자담배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 리듬이 흐트러질 때 붙잡기 쉬운 도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친구가 먼저 건드린 건 의외로 ‘담배’가 아니었다. 늦은 시간 카페인을 줄이고, 물을 더 자주 마시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일정하게 맞추려 했다. 이것만으로도 “오늘은 덜 찾네”라는 날이 생겼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활관리의 핵심이 ‘정죄’가 아니라 ‘환경을 다시 짜는 것’이라는 걸 다시 느꼈다. 내가 버티기 쉬운 환경을 만들면 습관은 더 커지고, 내가 멈추기 쉬운 환경을 만들면 습관은 생각보다 조용히 줄어든다.
3. 대체 루틴을 만들자 전자담배 오해가 ‘내 행동’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자담배 오해를 줄이는 데 가장 도움이 된 방법은 친구 말로는 대체 루틴이었다. 손이 가는 순간을 완전히 없애려 하기보다, 그 순간을 다른 행동으로 바꾸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욕구가 올라오면 바로 물을 한 컵 마시거나, 창문을 열고 깊게 호흡을 몇 번 해본다. 어떤 날은 복도를 잠깐 걷고, 어떤 날은 어깨를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한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2~3분짜리 행동인데도 흐름이 바뀌는 날이 분명히 있었다고 했다.
나는 이 지점에서 ‘오해’가 갑자기 현실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전자담배 오해는 머릿속에서만 떠다니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덜 해롭겠지”라는 생각은 언제든 다시 돌아온다. 그런데 대체 루틴을 만들면, 오해가 내 행동 패턴으로 드러난다. 내가 정말로 담배 자체가 필요한지, 아니면 피로를 잠깐 끊고 싶은지, 스트레스를 가라앉히고 싶은지, 손이 허전한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 구분이 되기 시작하면 대응도 구체 해진다.
친구가 좋았다고 말한 또 하나는 완벽하게 지키려 하지 않는 태도였다. 어떤 날은 잘 되고, 어떤 날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다시 생활관리로 돌아오는 연습을 했다. 그 과정에서 말버릇도 달라졌다고 한다. “못 끊겠다”가 아니라 “이 시간대가 특히 약하다”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표현이 바뀌니, 대체 루틴도 그 시간대에 맞춰 붙일 수 있었고, 실패해도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만 조정하면 된다는 감각이 생겼다고 했다.
지금 친구는 여전히 조절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예전처럼 무심코 손이 가는 날은 확실히 줄었다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가 현실적이라고 느낀다. 전자담배를 둘러싼 오해를 깨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공포도, 방심도 아닌 생활관리다. 내 하루를 천천히 들여다보고, 작은 개선을 반복하는 과정이 결국 가장 오래간다.
전자담배 오해와 생활관리는 한 문장으로 결론 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내게 중요한 건 “안전하다/위험하다”의 싸움보다, 내 생활에서 사용 빈도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어떤 순간에 손이 가는지, 그 순간을 어떤 대체 루틴으로 바꿀 수 있는지였다. 친구의 경험처럼 작은 계기 하나로도 생활을 돌아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개선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나는 단정 대신 관찰을, 극단 대신 생활관리를 선택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