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1을 처음 접하고 퀄리파잉(예선) 경기를 보던 날이었습니다. 가장 빠른 랩 타임을 기록하며 환호하던 드라이버의 기록이 몇 초 뒤 갑자기 화면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옆에는 'Lap time deleted - Track limits'라는 문구가 떴습니다. 해설진은 "아, 트랙 리밋을 넘었군요. 아쉽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슬로 모션으로 보여주는 화면을 아무리 봐도 제 눈에는 바퀴가 흰 선에 걸쳐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 정도는 그냥 넘어가 주면 안 되나? 아니, 운전을 저렇게 잘하는 사람들이 왜 선 하나를 못 지키지? 일부러 그러는 건가?"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축구장 라인처럼 명확하게 나가는 것도 아니고, 깻잎 한 장 차이로 기록이 삭제되고 순위가 바뀌는 상황이 너무나 야박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경기를 계속 지켜보면서, 그리고 F1이라는 스포츠의 속성을 이해하게 되면서 이 트랙 리밋 논란이 단순히 드라이버의 부주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본능과 안전을 위한 타협, 그리고 기술의 발전이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필연적인 딜레마였습니다. 오늘은 입문자를 가장 헷갈리고 답답하게 만드는 규칙, 트랙 리밋 논란이 왜 매번 반복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0.1초를 위한 본능적인 질주와 시야의 사각지대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드라이버들이 왜 자꾸 그 선을 넘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F1은 1000분의 1초를 다투는 스포츠입니다. 코너를 돌 때 트랙의 바깥쪽을 넓게 쓰면 쓸수록, 코너를 탈출하는 속도는 빨라집니다. 물리학적으로 회전 반경을 넓게 가져가야 속도를 줄이지 않고 코너를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드라이버들에게 트랙의 하얀색 경계선은 '넘지 말아야 할 울타리'가 아니라, '밟고 지나가야 할 발판'으로 인식됩니다. 그 선을 밟느냐 못 밟느냐에 따라 직선 구간에서의 최고 속도가 달라지고, 그것이 랩 타임 0.1초, 0.2초의 차이를 만듭니다. 그 찰나의 시간이 폴 포지션(1등 출발)과 중위권을 가르기 때문에, 드라이버들은 본능적으로 차를 바깥으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앉아 있는 위치와 시야입니다. F1 드라이버는 땅바닥에 거의 누운 자세로 운전합니다. 시선 위치가 매우 낮아서 자기 차의 앞바퀴조차 정확히 보이지 않습니다. 하물며 차체 뒤쪽에 달린 뒷바퀴가 지금 흰 선을 밟고 있는지, 1cm 벗어났는지를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수천 번의 연습을 통해 몸에 익힌 감각과 엉덩이로 느껴지는 진동, 그리고 주변의 풍경이 지나가는 속도감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짐작할 뿐입니다.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코너를 돌면서 타이어를 흰 선 위에 정확히 올려놓는 것은, 눈을 감고 바늘귀에 실을 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매 바퀴 한계선을 시험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넓게 쓰고 싶은 욕망과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이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아주 미세한 차이로 선을 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고의적인 반칙이라기보다는 더 빨리 달리고 싶은 레이서의 본능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에 가깝습니다.
서킷 디자인의 딜레마와 아스팔트 런오프의 유혹
하지만 드라이버의 본능만 탓하기에는 서킷의 구조적인 문제도 큽니다. 과거의 올드 스쿨 서킷이나 모나코 같은 시가지 서킷은 트랙 바로 옆에 벽이 있거나 자갈밭(그래블)이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트랙 리밋을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선을 넘으면 벽에 부딪히거나 자갈에 빠져 경기를 망치기 때문에, 드라이버들이 알아서 조심합니다. 물리적인 처벌이 즉각적으로 따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많은 서킷은 안전을 위해 트랙 바깥쪽에 넓은 아스팔트 포장도로(런오프)를 깔아 두었습니다. 차가 미끄러져 나가더라도 벽에 부딪히지 않고 안전하게 감속하거나 다시 트랙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만든 안전지대입니다.
이 '안전한 아스팔트'가 역설적으로 트랙 리밋 논란의 주범이 되었습니다. 드라이버 입장에서는 트랙 바깥으로 나가도 차가 망가지지 않고, 오히려 마찰력이 좋은 아스팔트를 밟고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나가면 죽는다'는 공포가 사라지니, '나가도 괜찮겠지'라는 유혹이 생깁니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레드불 링 같은 서킷에서 트랙 리밋 위반이 수백 개씩 쏟아져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서킷을 설계할 때 안전을 위해 만든 공간이, 경쟁에서는 규정을 위반하기 딱 좋은 공간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시 모든 곳에 자갈을 깔 수도 없습니다. 자갈밭은 차가 뒤집힐 위험이 있고, F1뿐만 아니라 오토바이 경기(MotoGP)도 함께 열리는 서킷의 경우 자갈이 라이더에게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최 측은 '안전'과 '엄격한 트랙 경계'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울퉁불퉁한 소시지 모양의 연석을 설치해 물리적으로 못 나가게 막아보기도 하지만, 이는 차량 파손을 유발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이렇게 서킷이 물리적으로 드라이버를 막아주지 못하는 환경에서, 오로지 흰 선이라는 페인트 자국 하나에 의존해 규제를 하려다 보니 논란은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것입니다.
센서의 냉정한 판단과 팬들이 느끼는 감정의 괴리
마지막으로, 이 논란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기술의 발전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팬들의 감정 차이입니다. 과거에는 심판이 눈으로 보고 "저 정도면 나갔다"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트랙 곳곳에 정밀 센서와 고해상도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1mm라도 타이어가 선을 벗어나면 센서는 가차 없이 '위반' 신호를 보냅니다. 기계는 감정이 없습니다. 드라이버가 얼마나 멋진 추월을 하고 있었는지, 그 랩이 얼마나 완벽했는지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O와 X, 이진법의 논리로만 판단합니다.
여기서 팬들은 괴리감을 느낍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드라이버들의 치열한 배틀과 멋진 주행입니다. 그런데 멋지게 코너를 돌아나간 장면을 보고 환호하고 있는데, 잠시 후 "3번 코너 트랙 리밋 위반, 기록 삭제"라는 자막이 뜨면 김이 확 빠져버립니다. 시각적으로는 분명 트랙 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센서는 나갔다고 합니다. "고작 깻잎 한 장 차이로 이 멋진 장면을 무효로 만든다고?"라는 반발심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레이스 막판, 순위 경쟁이 치열할 때 트랙 리밋 페널티로 순위가 뒤바뀌면, 경기가 트랙 위가 아닌 사무실 책상 위에서 결정된 것 같은 찝찝함을 줍니다.
게다가 모든 코너에서 똑같은 기준으로 적용되는 것 같지 않다는 의심도 한몫합니다. 어떤 코너는 센서가 민감하고, 어떤 코너는 조금 봐주는 것 같고, 지난 경기에서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잡는 것 같은 '일관성'의 문제가 겹치면 팬들의 불만은 폭발합니다. 기술은 점점 더 정밀해져서 인간의 눈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오차까지 잡아내지만, 그것이 과연 스포츠의 재미와 감동을 지키는 길인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 남습니다. 완벽한 공정함을 위해 도입된 기술이,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을 반감시키고 보는 사람을 피로하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상황. 이것이 트랙 리밋 논란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욱 거세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론
트랙 리밋 논란이 매번 반복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드라이버에게는 0.1초라도 줄이고 싶은 '속도에 대한 본능'이 있고, 서킷에는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넓은 런오프'라는 구조적 유혹이 있으며, 이를 1mm의 오차도 없이 잡아내는 '차가운 센서'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맞물려 돌아가는 한, "선을 넘었냐, 안 넘었냐"는 논쟁은 F1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선수들이 답답하고 규정이 야속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트랙 리밋 경고가 뜰 때마다 다르게 생각합니다. 저 경고 메시지는 드라이버가 지금 기계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극한까지 몰아붙이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입니다. 그들은 실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학의 법칙과 싸우며 트랙의 단 1cm까지도 남김없이 사용하고 있는 중입니다. 비록 기록은 삭제될지언정,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주는 긴장감이야말로 F1을 보는 또 다른 재미가 아닐까요? 앞으로 "Lap time deleted"라는 자막을 보게 된다면, 짜증을 내기보다는 "와, 저 선수는 정말 벼랑 끝까지 달리고 있구나"라고 그들의 용기와 투쟁심에 박수를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그것이 이 반복되는 논란 속에서 레이스를 좀 더 즐겁게 즐기는 방법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