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본질은 '인간의 신체 능력 경쟁'입니다. 육상, 수영, 축구... 장비가 조금 좋을 수는 있어도 결국은 선수의 피지컬이 승부를 가르죠.
그런데 F1은 좀 이상합니다. 작년까지 매번 우승하던 세계 챔피언이, 팀을 옮기자마자 예선 탈락을 밥 먹듯이 합니다. 운전 실력이 갑자기 사라진 걸까요? 아니면 작년의 우승이 그저 '차 빨(Car Performance)'이었던 걸까요?
입문자들이 가장 헷갈려하고, 때로는 실망하기도 하는 F1의 불편한 진실. "과연 F1은 스포츠인가, 기술 박람회인가?" 이 영원한 난제에 대해 체육학 전공자의 관점에서 명쾌한 답을 내려드립니다.

1. 잔인한 현실: 차가 8할, 사람이 2할이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F1은 장비 빨이 지배하는 스포츠가 맞습니다. 통상적으로 전문가들은 [머신 성능 80% + 드라이버 실력 20%]라고 봅니다.
아무리 전설적인 드라이버 '미하엘 슈마허'나 '루이스 해밀턴'이라도, 꼴찌 팀(하스나 윌리엄스 등)의 차를 타면 우승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한계입니다.
엔진 출력이 50마력 딸리고, 코너에서 다운포스가 부족해 차가 밀리는데, 드라이버의 근성으로 이를 극복한다? 만화에서는 가능하지만, 0.001초를 다투는 F1에서는 불가능합니다. 1등 팀의 차는 이미 물리 법칙의 한계까지 달리고 있으니까요.
2. 그렇다면 드라이버는 그저 '승객'인가?
"그럼 그냥 제일 좋은 차 타는 놈이 우승하는 거네? 드라이버는 아무나 태워도 되는 거 아냐?"
여기서 F1의 진짜 묘미가 나옵니다. 차가 80%를 결정한다면, 나머지 20%의 '변수'를 누가 채우느냐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1) 천장은 차가 정하고, 도달은 사람이 한다
좋은 차는 '최대 100점'을 낼 수 있는 잠재력을 줍니다. 하지만 실력 없는 드라이버는 좋은 차를 타고도 80점밖에 못 냅니다. 반면 천재 드라이버는 99.9점, 아니 가끔은 101점을 뽑아냅니다.
"이 차의 한계까지 쥐어짜 낼 수 있는가?" 여기서 수백억 원의 연봉 차이가 발생합니다.
(2) 팀 메이트를 보면 답이 나온다
그래서 F1에서는 '팀 메이트'와의 비교가 절대적입니다. 똑같은 장비를 줬는데 누구는 우승하고 누구는 5등을 한다면? 그 격차가 바로 드라이버의 순수한 실력 차이입니다.
레드불 팀의 '막스 페르스타펜'이 무서운 이유는, 차도 좋지만 그 좋은 차보다 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3. 이적시장의 아이러니: "증명해라, 그러면 좋은 차를 줄게"
F1 드라이버들의 커리어는 '좋은 차를 타기 위한 면접'의 연속입니다.
신인들은 하위권 팀의 느린 차(똥차)를 탑니다. 우승은 꿈도 못 꿉니다. 하지만 그 느린 차로 기적 같은 10등(포인트권)을 하거나, 팀 메이트를 압도하면 상위권 팀의 러브콜을 받습니다.
"쟤는 느린 차로 저 정도 했으니, 우리 차를 주면 날아다니겠는데?"
반대로 상위권 팀에서 성적을 못 내면 가차 없이 방출되어 하위권 팀으로 밀려납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성적이 곤두박질칩니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차가 바뀌니 바보가 되었다." 이 잔인한 추락을 지켜보는 것도 F1 팬들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4. 최고의 머신은 '입을 수 있는 옷'이다
가끔은 차 성능이 절대적으로 좋은데도 드라이버가 적응을 못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드라이버는 앞바퀴가 예민한 차(Oversteer)를 좋아하고, 어떤 드라이버는 뒷바퀴가 묵직한 차(Understeer)를 좋아합니다.
차의 특성과 드라이버의 운전 스타일이 '궁합'이 맞았을 때, 1+1=2가 아니라 5가 되는 폭발력이 나옵니다.
그래서 F1은 단순히 기계를 타는 게 아니라, "나에게 맞는 슈트를 입고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비싼 명품 정장도 사이즈가 안 맞으면 불편해서 뛸 수 없는 것처럼요.
5. 글을 마치며
F1은 장비 빨입니다. 하지만 그 장비를 극한으로 다루는 것은 인간입니다.
우리는 1등 하는 차를 보며 기술력에 감탄하지만, 그 차 안에서 중력가속도 5G를 버티며 0.1초를 줄이려는 드라이버의 땀방울을 보며 감동합니다.
다음 경기를 보실 때는 1등만 보지 마세요. "저 꼴찌 팀 드라이버가 자기 차 성능 이상으로 잘하고 있는 건 아닐까?"를 찾아보세요. 흙 속의 진주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자, 이제 F1의 본질과 선수들의 애환까지 모두 알았습니다. 머리가 꽉 찼으니, 이제 편안하게 눈으로 즐길 차례입니다.
화면에 수많은 숫자가 뜨는데, 도대체 뭘 봐야 재밌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F1 입문 11일차] F1 중계에서 이것만 봐도 재미가 달라진다: 입문자가 집중해야 할 '3가지 관전 포인트' (스타트, 라디오, 타이어 그래픽)에 대해 정리해 드립니다.
지금까지 체육 전공 F1 팬, '스포츠가 좋아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