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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입문 12일차] F1은 한 경기보다 '시즌 전체'가 더 재밌다: 라이벌 구도와 누적되는 서사의 힘

by rootingkakao 2026. 1. 17.

F1 입문자분들이 흔히 하는 오해가 있습니다.
"오늘 경기 누가 이겼어? 페르스타펜? 아, 그럼 끝난 거네."

하지만 F1 찐 팬들의 반응은 다릅니다.
"와, 페르스타펜이 이겼지만 2등이랑 점수 차가 5점밖에 안 줄어들었어! 다음 경기에서 리타이어 한 번이면 역전이다!"

F1은 24편의 영화가 아니라, 24부작 드라마입니다. 1화(개막전)부터 24화(최종전)까지 이어지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오늘은 한 경기, 한 경기의 결과가 어떻게 나비효과가 되어 연말의 챔피언을 만드는지, '시즌 챔피언십(Championship)'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F1 시즌 챔피언십 포인트 경쟁 그래프와 라이벌 구도의 서사 시각화

1. 티끌 모아 태산: 포인트 시스템의 미학

F1의 모든 것은 '점수(Point)'로 귀결됩니다.
1등은 25점, 2등은 18점, 3등은 15점... 그리고 10등(1점)까지만 점수를 줍니다. 11등부터는 0점입니다.

이 점수가 1년 내내 누적됩니다.
어떤 선수는 초반에 연승해서 도망가고, 어떤 선수는 차근차근 2등, 3등을 하며 쫓아갑니다. 그러다 선두가 사고로 0점을 받는 순간, 순식간에 순위가 뒤집힙니다.
'누적의 미학' 때문에 우리는 응원하는 선수가 1등을 못 하더라도 "괜찮아, 4등이라도 해서 12점 챙기자!"라며 끝까지 경기를 지켜보게 됩니다.


2. "지난여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같은 반 친구와 1년 내내 싸운다고 생각해 보세요. 감정이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3라운드에서 A 선수가 B 선수를 밀어버렸습니다. B 선수는 벼르고 있다가 10라운드 홈경기에 가서 A 선수의 앞길을 막아버립니다.
단발성 경기라면 그냥 "비매너네" 하고 끝나겠지만, 시즌제이기 때문에 "이건 복수전이다"라는 서사가 생깁니다. 해설자들도 "아, 5개월 전 그 사고를 아직 잊지 않았군요!"라며 흥분합니다. 이 질긴 악연(Rivalry)을 따라가는 것이 F1의 진짜 재미입니다.


3. 1등보다 치열한 '4등 싸움'

많은 분이 1등 싸움만 보지만, 사실 F1의 백미는 중위권 팀들의 '상금 전쟁'입니다.

팀 순위(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 따라 시즌 종료 후 받는 배당금이 수백억 원씩 차이 납니다.
그래서 꼴찌 팀이 기적적으로 10등을 해서 1점을 따내면, 마치 우승한 것처럼 서로 부둥켜안고 웁니다. 그 1점 때문에 내년 팀 운영비가 달라지거든요.
시즌 후반부로 갈수록 "제발 1점만!"을 외치는 하위권 팀들의 처절한 생존 경쟁은 한 편의 휴먼 다큐멘터리입니다.


4. 모든 것이 결정되는 마지막 날 (The Finale)

이 모든 드라마는 12월 마지막 경기, '아부다비 그랑프리'를 향해 달려갑니다.

2021년 시즌처럼,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두 선수의 점수가 동점인 영화 같은 상황도 벌어집니다.
1년 동안 지구 20바퀴를 돌며 싸웠는데, 결국 마지막 한 경기에서 누가 먼저 들어오느냐로 챔피언이 결정되는 순간. 그 압도적인 긴장감은 시즌 전체를 지켜본 팬들에게만 주어지는 최고의 보상입니다.


5. 글을 마치며

지금 F1에 입문하신다면, 당장의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마세요.
"지금은 지고 있지만, 후반기 업데이트 때 두고 보자."
이런 마음으로 긴 호흡의 드라마를 즐겨보세요. 넷플릭스 드라마보다 더 각본 없는 드라마가 매주 주말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F1을 1년 정도 보고 나니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축구나 야구를 보는데 예전과는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저 감독은 왜 저런 전략을 썼지?", "지금 분위기가 바뀌는 타이밍인데?"
F1이 제 스포츠 관람의 눈(Insight)을 완전히 업그레이드해 준 것이죠.

다음 글에서는 [F1 입문 13일차] F1을 보기 시작한 뒤, 다른 스포츠 보는 방식도 달라졌다: 확률과 맥락을 읽는 눈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체육 전공 F1 팬, '스포츠가 좋아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