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냥 제일 좋은 엔진 달고, 제일 겁 없는 드라이버가 엑셀 끝까지 밟으면 1등 하는 거 아냐?"
마치 육상 100m 달리기처럼, 피지컬과 장비가 좋으면 이기는 단순한 '스피드 게임'인 줄 알았죠. 하지만 경기를 몇 번 보다 보니 이상한 점이 보였습니다. 1등으로 잘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춰 서서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비가 오지도 않는데 레인 타이어를 준비하며 분주하게 무전을 주고받는 모습들...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이건 달리기 시합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하는 고도의 심리 게임이구나." 오늘은 F1을 바라보는 제 관점이 완전히 뒤집힌, 충격적인 깨달음의 순간을 공유합니다.

1. 이름부터가 '규칙(Formula)'이다
여러분, F1의 'Formula(포뮬러)'가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수학 공식? 화학식? 아닙니다. 여기서 Formula는 '규칙(Rule)'을 뜻합니다.
만약 단순히 "제일 빠른 차를 만들어라"가 목표라면, 팀들은 로켓 엔진을 달거나 바퀴를 6개 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F1은 주최 측이 정한 아주 엄격한 규격(엔진 크기, 차체 무게, 타이어 크기 등)이라는 '공식' 안에서 경쟁해야 합니다.
즉, F1은 무제한 속도 경쟁이 아니라, "우리가 정해준 제약 조건 속에서 누가 가장 효율적인 답을 찾아내는가?"를 겨루는 공학 전쟁입니다.
2. 타이어: 1등을 꼴찌로 만드는 마법
제가 F1의 묘미에 빠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타이어 전략'이었습니다. F1 타이어는 일반 승용차 타이어와 달리 수명이 극도로 짧습니다.
- 소프트(빨강): 엄청 빠르지만, 금방 닳아서 10바퀴도 못 감.
- 하드(흰색): 느리지만,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음.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소프트를 끼고 미친 듯이 달려서 격차를 벌릴 것인가?" vs "하드를 끼고 느리지만 피트인(타이어 교체) 없이 꾸준히 갈 것인가?"
잘 달리던 선수가 피트인(Pit-in)을 해서 25초를 손해 보는 순간, 순위표는 요동칩니다. 눈앞의 추월보다 '언제 타이어를 바꿀 것인가'라는 타이밍 싸움이 승패를 가르는 것을 보며, 저는 바둑이나 체스를 떠올렸습니다.
3. 맑은 하늘에 비를 기다리는 사람들
F1 팀에는 수백억 원짜리 슈퍼컴퓨터로 날씨만 분석하는 전문가가 있습니다. 트랙의 절반은 비가 오고 절반은 말라 있을 때, 드라이버와 팀은 도박을 해야 합니다.
"지금 들어가서 레인 타이어를 낄까? 아니야, 5분 뒤에 비가 그친다면?"
이 순간의 선택 하나로 하위권 팀이 우승을 차지하는 기적(대박)이 일어나기도 하고, 1등이 미끄러져 리타이어(쪽박) 하기도 합니다.
단순히 운전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 확률을 계산하고 결단력을 발휘해야 하는 '운영의 묘'가 있는 스포츠였던 것입니다.
4. 드라이버는 혼자가 아니다 (Team Radio)
처음엔 드라이버 혼자 고독하게 운전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중계 화면에 뜨는 '팀 라디오(Team Radio)'를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박스, 박스(타이어 교체해라).", "지금 페이스 줄여라.", "뒤차와 2.5초 차이다."
엔지니어는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보고 드라이버를 조종합니다. 드라이버는 파일럿이고, 피트 월(Pit Wall)은 관제탑입니다.
F1은 1명의 영웅이 만드는 드라마가 아니라, 수백 명의 엔지니어가 함께 달리는 팀 스포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팀원들의 심장 박동 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5. 글을 마치며
이제 F1이 조금 다르게 보이시나요? 저에게 F1은 더 이상 단순한 자동차 경주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가장 빠른 기계 위에서 펼쳐지는 극한의 두뇌 싸움이자, 확률과 통계의 예술입니다.
자, 이제 F1이 '무엇'인지는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싸우는 '말(Player)'들은 누구일까요? 축구에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있듯, F1에도 뼈대 굵은 명문 팀들이 존재합니다.
다음 글에서는[F1 입문 3일차] F1은 왜 3일이나 할까? 금요일부터 이미 '결승'은 시작되고 있었다 를 통해, 여러분이 궁금증을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체육 전공 F1 팬, '스포츠가 좋아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