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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입문 6일차] 왜 잘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출까? 승부를 뒤집는 2초의 마법, '피트 스톱'의 세계

by rootingkakao 2026. 1. 11.

레이싱 게임을 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그냥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리는 게 제일 빠르다는 것을요. 그래서 F1을 처음 볼 때 가장 이해가 안 가는 장면이 바로 '피트 스톱(Pit Stop)'입니다.

1등으로 잘 달리던 선수가 갑자기 샛길(피트 레인)로 빠져서 차를 세웁니다. 그사이 뒤따르던 차들이 쌩쌩 지나가고, 순위는 5등, 6등으로 곤두박질칩니다.
"왜 스스로 손해 보는 짓을 하지? 그냥 낡은 타이어로 버티면 안 되나?"

하지만 F1을 계속 보다 보니 깨달았습니다. 피트 스톱은 '쉬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순위를 뒤집기 위한 공격 버튼'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오늘은 F1이 체스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결정적 순간, 피트 스톱 전략을 파헤쳐 봅니다.



"F1 피트 스톱 2초의 승부 20명의 메카닉이 타이어를 교체하는 긴박한 순간

1. 25초를 버리고 30초를 얻는다

피트 레인에 들어와서 타이어를 갈고 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0~25초입니다. 어마어마한 손해죠.

하지만 낡은 타이어를 계속 끼고 달리면 랩당 2초씩 느려집니다. 10 바퀴면 20초, 20 바퀴면 40초를 손해 봅니다.
팀은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지금 25초를 까먹더라도, 새 타이어를 끼고 남은 바퀴 동안 30초를 벌면 이득이다!" 이 계산이 서는 순간, 드라이버에게 "박스(Box, 피트로 들어와라)!"를 외치는 것입니다.


2. 20명이 만드는 2초의 예술: 그들의 역할 분담

F1 피트 스톱은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협동심의 끝판왕입니다. 타이어 4개를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2~3초. 세계 기록은 무려 1.80초입니다. 이 짧은 순간을 위해 약 20명의 피트 크루가 달라붙습니다.

  • 타이어 건 맨 (4명): 바퀴마다 1명씩, 휠 너트를 풀고 조입니다.
  • 타이어 제거/장착 맨 (8명): 바퀴마다 2명씩, 한 명은 헌 타이어를 빼고 한 명은 새 타이어를 끼웁니다.
  • 잭 맨 (2명): 차의 앞(Front Jack)과 뒤(Rear Jack)를 들어 올립니다.
  • 스태빌라이저 (2명): 차가 공중에 떴을 때 흔들리지 않도록 양옆(사이드팟)을 꽉 잡아 고정합니다.
  • 프론트 윙 조절 (2명): 드라이버 요청이 있을 경우, 앞 날개 각도를 전동 드릴로 미세하게 조절합니다.
  • 기타 예비 인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예비 잭 맨이나 엔진 스타터 대기 인원 등이 포함됩니다.

단 한 명이라도 0.5초 삐끗하면 경기는 망합니다. 시속 100km로 들어오는 차 앞에 몸을 던져 0.01초라도 줄이려는 메카닉들의 모습을 보면, 드라이버만 싸우는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3. 추월하지 않고 추월한다: '언더컷(Undercut)'

이것만 알면 당신도 F1 고수입니다. F1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필승 전략, '언더컷'입니다.

상황: A 선수가 B 선수를 뒤쫓고 있음 (추월이 어려움)

  1. A 선수가 먼저 피트인을 해서 새 타이어로 갈아입습니다.
  2. B 선수는 헌 타이어로 계속 달립니다.
  3. A 선수는 새 타이어의 성능으로 미친 듯이 속도를 냅니다. (이때 B 선수보다 랩당 2~3초 빠름)
  4. B 선수가 2바퀴 뒤에 피트인을 하고 나옵니다.
  5. 어라? A 선수가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

트랙 위에서 직접 싸우지 않고, '타이어 교체 타이밍'만으로 순위를 뒤집는 이 짜릿한 전략! 이것을 처음 목격한 날, 저는 F1이 단순한 달리기 시합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4. "망했습니다!" 피트 스톱 실수

하지만 도박에는 위험이 따릅니다. 타이어가 잘 안 빠지거나 나사가 헛돌아서 2초에 끝날 작업이 5초, 10초가 걸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잘 달리던 선수가 피트 크루의 실수 하나로 우승권에서 멀어질 때, 드라이버는 핸들을 치며 절규하고 피트 크루는 고개를 떨굽니다. 이 잔인한 드라마가 피트 스톱의 또 다른 묘미이기도 합니다.


5. 글을 마치며

이제 경기를 보다가 선수가 갑자기 피트로 들어가도 당황하지 마세요. "아, 지금 승부수를 던졌구나! 언더컷을 하려는 거구나!"라고 보시면 됩니다.

피트 스톱은 드라이버와 엔지니어, 그리고 20명의 메카닉이 한 몸이 되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F1은 '개인전'인 척하는 '철저한 팀 스포츠'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팀이라는 게 참 묘합니다.
"팀을 위해 네가 희생해라", "동료에게 길을 비켜줘라"
가끔은 이런 비정한 명령(Team Order)이 내려오기도 하거든요. F1에서만 볼 수 있는 잔인한 동료애의 세계.

다음 글에서는 [F1 입문 7일차] F1은 개인전이 아니라 '잔인한 팀 스포츠'였다: 팀 오더와 세컨드 드라이버의 비애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체육 전공 F1 팬, '스포츠가 좋아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