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0.1초는 찰나입니다. 눈을 한 번 깜빡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약 0.3초니까, 0.1초는 우리가 인지조차 하기 힘든 짧은 시간이죠.
하지만 F1에 입문하고 나서 저는 이 숫자의 무게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선전이 끝난 후, 2등을 한 선수가 핸들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욕설을 내뱉습니다. 1등과의 차이는 고작 0.012초. 손가락 하나 까딱할 시간도 안 되는 차이로 패배한 것입니다.
"아니, 저 정도면 그냥 같이 들어온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지만, F1의 세계에서 0.1초는 '실수'가 아닌 '실력'의 차이였습니다. 오늘은 드라이버들의 멘털을 가장 잔인하게 갉아먹는 숫자, '랩타임(Lap Time)'의 공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 시속 300km에서의 0.1초는 '8미터'다
단순히 시간으로 보면 0.1초는 짧습니다. 하지만 이를 거리로 환산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F1 머신이 시속 300km로 달릴 때, 1초에 약 83m를 이동합니다.
즉, 0.1초는 약 8.3m입니다. 이는 F1 차량(약 5.5m) 한 대 반이 들어가는 거리입니다.
결승선 사진 판독을 해보면 깻잎 한 장 차이가 아니라, 차 한 대가 넉넉히 들어갈 만큼 뻥 뚫린 격차라는 뜻입니다. 프로 세계에서 8m 차이는 운이 아니라 명백한 패배입니다. 그래서 드라이버들은 0.1초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2. 5km 서킷을 도는데 오차는 5cm 이내여야 한다
이 0.1초를 줄이기 위해 드라이버가 짊어지는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한 바퀴(Lap)를 도는 데 약 1분 30초가 걸리고, 코너는 15개 정도 있습니다.
만약 첫 번째 코너에서 브레이크를 100분의 1초 늦게 밟아서 차가 5cm 밀리면? 0.05초 손해 봅니다.
마지막 코너에서 엑셀을 100분의 1초 늦게 밟으면? 또 0.05초 손해 봅니다.
합치면 0.1초. 이 작은 실수 두 번으로 출발 순위(Grid)가 1등에서 5등으로 떨어집니다.
5km가 넘는 긴 트랙을 도는 동안, 단 한 순간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매 코너를 기계처럼 완벽하게 공략해야 한다는 강박. F1이 '극한의 멘탈 스포츠'인 이유입니다.
3. "I'm sorry guys." (죄송합니다)
F1 중계를 보며 가장 마음 아픈 순간이 있습니다. 예선이 끝나고 팀 엔지니어가 무전을 보냅니다.
엔지니어: "P2. 폴 포지션과 0.05초 차이입니다."
드라이버: (한숨) "아... 죄송합니다. 4번 코너에서 실수가 있었어요. 미안합니다."
세계에서 운전을 2번째로 잘해놓고 사과를 합니다.
F1 드라이버의 연봉과 재계약 여부는 오직 이 '팀 메이트와의 기록 비교'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팀 동료보다 0.2초 느리다"는 평가는 곧 "너는 해고야"라는 말과 같습니다. 매주 성적표가 전 세계에 공개되는 삶, 그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폭발시킵니다.
4. 1000분의 1초를 느끼는 사람들
더 놀라운 것은 드라이버들이 자신의 기록을 본능적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시속 300km로 달리면서 "방금 코너에서 0.1초 까먹은 것 같아"라고 느끼고, 실제로 데이터를 보면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들은 엉덩이로 노면의 진동을 느끼고, 손끝으로 타이어의 한계를 읽어냅니다. 우리가 둔감하게 흘려보내는 찰나의 시간을 쪼개고 늘려서 쓰는 '시간의 마법사'들입니다.
5. 글을 마치며
이제 F1 예선전을 보실 때, 화면 왼쪽에 뜨는 숫자를 유심히 봐주세요.
[+0.082]
그저 작은 숫자로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0.082초를 줄이기 위해 드라이버는 목숨을 걸고 브레이크를 늦게 밟았고, 엔지니어는 밤새워 날개 각도를 조절했을 것입니다. 그 치열함의 무게를 아는 순간, 숫자 하나하나가 감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영원한 논쟁거리가 생깁니다.
"0.1초 차이가 드라이버 실력 때문일까? 아니면 차가 좋아서일까?"
같은 드라이버인데 팀을 옮기자마자 성적이 곤두박질치거나, 반대로 날아오르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F1의 영원한 떡밥, [Human vs Machine].
다음 글에서는 [F1 입문 10일 차] 차가 바뀌면 사람이 달라 보인다: F1은 장비 빨인가 실력 빨인가? (이적생들의 사례로 본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체육 전공 F1 팬, '스포츠가 좋아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