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F1 팀/머신 1일차] F1 팀을 처음 알게 됐을 때, 왜 다 비슷해 보였을까: 입문자의 뇌부하와 깨달음

by rootingkakao 2026. 1. 20.

지금이야 "저건 레드불의 리어 윙이네", "저건 페라리의 사이드팟이네" 하면서 척척 구분하지만, 저에게도 F1이 그저 '윙윙거리는 색깔들의 행진'으로만 보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축구나 야구 같은 구기 종목은 입문이 참 쉽습니다. 유니폼 색깔이 명확하고, 홈과 원정 유니폼이 딱 구분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선수들의 얼굴이나 등번호가 잘 보이니까요. 하지만 F1은 달랐습니다.

처음 중계 화면을 켰을 때 느꼈던 그 당혹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스무 대의 차가 서킷을 뱅글뱅글 도는데, 제 눈에는 그저 다 똑같이 생긴, 바퀴 네 개 달린 납작한 자동차들이었거든요. 해설자는 쉴 새 없이 "알핀이 어쩌고", "알파타우리가 저쩌고" 떠들어대는데, 도대체 누가 누구를 말하는 건지, 화면에 잡힌 저 파란 차가 방금 말한 그 팀이 맞는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F1 입문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벽, 바로 '팀 식별의 혼란'입니다.

오늘은 제가 F1이라는 거대한 세계에 발을 들였을 때 겪었던 그 '안면 인식 장애(아니, 차체 인식 장애)'의 경험담과, 도저히 외워지지 않던 팀들이 어느 순간 각자의 '성격'을 가진 캐릭터로 보이기 시작했던 결정적인 계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혹시 지금 중계를 보며 "누가 누군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좌절하고 계신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누구나 겪는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니까요.



F1 입문자가 겪는 팀 구분의 어려움과 다양한 머신 색상의 시각적 혼란스러움

1. 움직이는 광고판들의 질주: 어제는 핑크, 오늘은 블루?

가장 먼저 저를 괴롭혔던 건 '색깔'이었습니다. 보통 스포츠 팀은 고유의 컬러가 있습니다. 맨유는 빨강, 첼시는 파랑처럼요. F1도 페라리의 빨간색 정도는 알겠더군요. 그런데 나머지 팀들은 저를 끊임없이 헷갈리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F1을 처음 봤을 때, 아주 예쁜 핑크색 차가 달리고 있었습니다. "와, 저 팀 색깔 참 곱다. '레이싱 포인트'라고? 기억해둬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죠. 그런데 다음 시즌이 되자 그 핑크색 차는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짙은 초록색 차가 등장했습니다. 알고 보니 팀 이름이 '애스턴마틴'으로 바뀌면서 색깔도 바뀐 겁니다. 또 어떤 팀은 작년엔 노란색과 검은색이 섞여 있었는데(르노), 올해는 갑자기 프랑스 국기 같은 파란색(알핀)으로 변신해서 나타납니다.

체육학 전공자로서 여러 스포츠를 접해봤지만, F1처럼 자본의 논리에 따라, 즉 메인 스폰서가 누구냐에 따라 팀의 정체성인 '색깔'이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종목은 처음이었습니다. 차 모양은 공기역학 때문에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겼는데, 유일한 식별 수단인 색깔마저 매년 바뀌다니요. 입문자 입장에서는 매 시즌이 마치 처음 보는 스포츠처럼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게다가 야간 경기가 되면 조명 때문에 짙은 녹색이나 짙은 남색, 검은색이 다 비슷해 보여서 해설자의 목소리에만 의존해야 하는 '까막눈' 신세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2. 이름이 너무 어렵다: 'A'의 저주와 컨스트럭터

색깔 구분이 안 되면 이름이라도 외워야 하는데, 팀 이름(컨스트럭터 명)은 또 왜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보통 스포츠 팀은 '지역명+팀명'이라 직관적인데, F1은 자동차 제조사나 기업 이름이 팀 명이 됩니다.

가장 황당했던 건 소위 'A의 저주'였습니다. 제가 입문했을 당시 그리드에는 '알파로메오(Alfa Romeo)', '알파타우리(AlphaTauri)', '알핀(Alpine)', '애스턴마틴(Aston Martin)'까지 A로 시작하는 팀이 무려 네 개나 있었습니다. 해설자가 급박하게 "알... 팀이 사고가 났습니다!"라고 외치면, "도대체 어느 알 씨네 팀이야?"라며 혼란에 빠졌죠. 심지어 알파로메오와 알파타우리는 이름도 비슷해서 시즌이 끝날 때까지 헷갈렸습니다.

게다가 '레드불(Red Bull)'은 음료수 회사고, '맥라렌(McLaren)'은 유모차 만드는 회사인 줄 알았고(나중에 엄청난 슈퍼카 브랜드란 걸 알았지만요), '하스(Haas)'는 공작기계 회사라니... 이질적인 기업들의 이름이 뒤섞여 시속 300km로 달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거대한 혼돈이었습니다. 도대체 이 복잡한 족보를 고인물 팬들은 어떻게 다 꿰고 있는 건지 존경스러울 따름이었습니다.


3. 색깔이 아닌 '성격'이 보이기 시작할 때

그렇게 몇 경기를 멍하니 보다가, 어느 순간 신기하게도 팀들이 구분되기 시작했습니다. 외관이나 이름 때문이 아니라, 그 팀들이 보여주는 행동 패턴, 즉 '성격(Character)'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화면 속의 빨간 차(페라리)는 항상 열정적이고 빠릅니다. 전 세계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죠. 그런데 꼭 결정적인 순간에 엉뚱한 타이어를 끼우거나 황당한 작전 지시를 내려서 다 된 밥에 재를 뿌립니다. "아, 쟤네는 잘생겼는데 허당기 있는 친구구나."

반면 남색 차(레드불)는 느낌이 완전히 다릅니다. 힙합 음악처럼 자유분방하고 거친데,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소름 돋을 정도로 완벽합니다. 피트 스톱은 2초 만에 끝내고, 전략은 대담합니다. "쟤네는 노는 것 같은데 전교 1등 하는 무서운 친구구나."

그리고 은색 또는 검은색 차(메르세데스)는 마치 대기업 임원들 같습니다. 차갑고, 철두철미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의 느낌이 강했죠. 가끔은 너무 완벽해서 정이 안 갈 정도로요.

이렇게 각 팀을 색깔이 아닌 '사람의 성격'에 대입해서 보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그 복잡하던 팀 이름과 로고가 뇌에 '탁!' 하고 입력되었습니다. 알핀은 프랑스 특유의 자존심 강한 중위권 팀, 하스는 헝그리 정신으로 버티는 팀... 이런 서사가 생기니 더 이상 헷갈리지 않게 되더군요.


4. 글을 마치며: 억지로 외우지 마세요

지금 F1을 보며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하시는 입문자분들, 지극히 정상입니다. 10개의 팀과 20명의 드라이버를 단번에 외우는 건 불가능합니다. 억지로 공부하듯 외우려 하지 마세요. 그러다 보면 지쳐서 떨어져 나갑니다.

그냥 편안하게 경기를 즐기세요. 그러다 보면 눈에 밟히는 팀이 하나 생길 겁니다. "쟤네는 왜 맨날 저래?"라며 욕을 하든, "와, 쟤네 진짜 멋있다"라며 감탄을 하든, 감정이 생기는 순간 그 팀의 색깔과 이름은 평생 잊히지 않게 됩니다. F1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먼저 팀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니까요.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여러분의 눈을 사로잡을 팀이 있을 겁니다. 분명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음료수 파는 회사인데, 페라리와 벤츠 같은 100년 전통의 자동차 명가들을 제치고 F1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는 팀. 바로 '황소 군단'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F1 팀/머신 2일차] Red Bull Racing은 왜 항상 앞에 있을까: "음료수 팔아서 우승했다"는 말이 최고의 칭찬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체육 전공 F1 팬, '스포츠가 좋아요'였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