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에 입문하기 전, 저에게 페라리는 그저 '부의 상징'이자 '가장 빠른 차'였습니다. 빨간색 스포츠카가 주는 강렬함, 그 섹시한 디자인과 배기음은 남자의 로망 그 자체였죠. 그래서 F1을 보기 시작했을 때, 자연스럽게 페라리를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페라리가 1등 하겠지?"라는 막연한 믿음과 함께 말이죠.
하지만 경기를 한 편, 두 편 볼수록 제 믿음은 의문으로, 그리고 탄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차는 분명히 빠릅니다. 예선전에서 1등도 자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일요일 결승전만 되면 무너집니다. 멀쩡히 잘 달리던 차가 엔진이 터져서 멈추거나, 타이어 교체 타이밍을 놓쳐서 순위가 곤두박질치고, 심지어 팀끼리 무전으로 우왕좌왕하다가 서로 엉키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레드불이 '정밀한 기계'라면, 페라리는 마치 '감정 기복이 심한 예술가' 같았습니다.
도대체 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이 명문 팀이 매주 주말마다 전 세계 팬들 앞에서 '개그 콘서트'를 찍는 걸까요? 오늘은 페라리 팬(티포시)이 된다는 것이 왜 '고행의 길'인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붉은 팀을 떠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체육학 전공자의 시선으로 분석해 봅니다.

1. 단순한 팀이 아니다, '국가'다
페라리가 다른 팀과 가장 다른 점은 바로 '무게감'입니다. 메르세데스나 레드불은 그냥 기업 팀입니다. 지면 "아, 이번엔 졌네" 하고 맙니다. 하지만 페라리는 다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페라리는 종교이자 국가대표입니다.
이탈리아의 모든 신문은 월요일 아침마다 페라리의 성적을 대서특필합니다. 우승하면 영웅이 되지만, 지면 역적으로 몰립니다. 팀 감독부터 미케닉, 드라이버까지 어마어마한 압박감(Pressure) 속에서 일합니다. 체육 심리학적으로 볼 때, 지나친 압박감은 수행 능력을 떨어뜨리고 판단력을 흐리게 만듭니다. 이를 '입스(Yips)'라고도 하죠.
페라리 피트 월(지휘통제실)을 보면 항상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습니다. 실수하면 잘린다는 공포 때문인지, 과감한 결단보다는 책임을 피하려는 소극적인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지금 들어올래? 아니면 한 바퀴 더 돌래? 네 생각은 어때?"라며 결정적인 순간에 드라이버에게 질문을 던지는(We are checking...) 우유부단함. 이것은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100년 전통이라는 왕관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생긴 '조직적인 강박증'처럼 보입니다.
2. "Plan E, Plan F..." 전략인가, 도박인가?
페라리를 보며 가장 복장 터지는 순간은 바로 '전략 미스'입니다. F1 팬들 사이에서 페라리의 전략은 밈(Meme)이 되었을 정도입니다.
남들이 다 비가 온다고 웨트 타이어를 준비할 때 혼자 드라이 타이어를 끼우고 나간다거나, 타이어를 3개만 들고 나와서 하나를 찾으러 뛰어다니는 모습은 이제 익숙합니다. 무전으로 "Plan E로 가자", "아니, Plan F를 생각 중이다"라며 알파벳 놀이를 하는데, 정작 결과는 항상 엉망입니다.
이런 실수들이 반복되는 걸 보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페라리는 '데이터'보다 '직관'이나 '정치'가 개입될 여지가 많은 구조라는 것을요. 레드불이 냉철한 계산기에 의해 움직인다면, 페라리는 이탈리아 특유의 다혈질적인 분위기와 수직적인 관료주의가 충돌하며 혼란을 빚어내는 것 같았습니다. 잘 달리는 차를 만들어놓고 스스로 발을 걸어 넘어지는 모습, 이것이 페라리의 비극이자 희극입니다.
3. 붉은색의 로망, 티포시(Tifosi)의 열정
이렇게 욕을 하면서도, 왜 전 세계 F1 팬의 절반 이상은 페라리를 응원할까요? 그건 바로 페라리만이 줄 수 있는 '낭만(Romance)' 때문입니다.
페라리의 홈 그라운드인 이탈리아 몬차 서킷에 가면, 관중석 전체가 붉은색으로 뒤덮입니다. 그들이 흔드는 거대한 깃발과 붉은 연막(Flare)을 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습니다. 성적이 좋든 나쁘든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내는 팬들, 그들을 '티포시'라고 부릅니다.
페라리 머신은 언제나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엔진 소리도 가장 감성적입니다. 레드불이 '이기기 위한 기계'라면, 페라리는 '달리는 예술작품'입니다. 비록 전략 팀이 바보 같은 짓을 해서 우승을 놓치더라도,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드라이버들의 처절한 사투와 붉은 차체의 아름다움은 팬들의 가슴을 울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시즌이 끝날 때마다 욕을 하면서도, 다음 해 3월이 되면 또다시 "올해는 다르다(Next Year is Our Year)"를 외치며 붉은 깃발을 꺼내 듭니다.
4. 글을 마치며: F1은 페라리다
누군가 "F1에서 가장 완벽한 팀이 어디냐"라고 묻다면 저는 레드불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F1 그 자체인 팀이 어디냐"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페라리라고 말할 것입니다.
실수투성이고, 감정적이고, 가끔은 한심해 보이지만, 그렇기에 가장 인간적인 팀. 기계적인 완벽함보다 인간적인 드라마를 원하신다면, 당신도 어쩔 수 없이 페라리의 팬(티포시)이 될 운명입니다. 물론, 매주 일요일 밤마다 뒷목을 잡을 준비는 하셔야겠지만요.
페라리가 '스스로 무너지는 팀'이라면, 여기 '외부의 충격으로 무너진 거인'이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F1을 7년 연속 제패했던 절대 권력자였지만, 규정 변화 한 번에 평범한 팀으로 전락해 버린 '메르세데스'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F1 팀/머신 4일차] Mercedes가 무너지는 걸 보며 느낀 것: 영원한 제국은 없다, F1 규정의 잔인함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체육 전공 F1 팬, '스포츠가 좋아요'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