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F1에 처음 관심을 가졌을 때, 메르세데스는 '절대존엄'이었습니다. 축구로 치면 전성기 시절의 바르셀로나, 농구로 치면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보다 더했습니다. 2014년부터 2021년까지, 무려 8년 동안 그들은 F1을 지배했습니다. 루이스 해밀턴이라는 천재 드라이버와 완벽한 기계적 성능이 결합된 '실버 애로우(Silver Arrow)'는 출발하면 그냥 1등이었습니다. 경기가 너무 뻔해서 "메르세데스 우승은 뉴스도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팬들은 지루해했습니다. "제발 누가 쟤네 좀 이겨봐라." 하지만 아무도 그 철옹성을 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2022년,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F1 주최 측이 자동차를 만드는 규칙(Technical Regulation)을 완전히 뜯어고쳤는데, 그해 개막전에서 메르세데스가 우승은커녕 차가 콩콩 뛰어다니며 제대로 달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1등 팀이 하루아침에 3~4위권으로 추락하는 충격적인 장면.
그걸 지켜보며 저는 스포츠의 본질적인 잔인함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좋은 선수가 있어도, 변화하는 환경(Rule)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사실을요. 오늘은 영원할 것 같았던 제국의 몰락과, 그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겪고 있는 처절한 성장통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1. 공룡을 멸종시킨 운석: 2022년 규정 대격변
F1은 몇 년에 한 번씩 차를 만드는 규정을 대대적으로 바꿉니다. 2022년에는 공기의 흐름을 차체 바닥으로 빨아들이는 '그라운드 이펙트(Ground Effect)' 방식이 도입되었습니다. 이는 모든 팀에게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신호였습니다.
지난 8년간 쌓아온 메르세데스의 데이터는 휴지 조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제로 팟(Zero Pod)'이라는 아주 파격적이고 날씬한 디자인을 들고 나왔습니다. 시뮬레이션상으로는 엄청나게 빠른 차였죠.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차가 고속으로 달리면 바닥에 닿을 듯 말 듯하며 위아래로 미친 듯이 진동하는 '포포징(Porpoising)'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드라이버인 루이스 해밀턴이 경기 후 허리를 부여잡고 차에서 기어 나오는 모습을 보며 전율이 일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던 독일의 명차 군단이, 기본적인 물리 현상 하나를 해결하지 못해 드라이버를 고문하고 있다니. F1이 얼마나 예민하고 잔인한 공학의 세계인지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2. "우리 데이터는 틀리지 않았다"는 오만
몰락보다 더 흥미로웠던 건 그들의 태도였습니다. 메르세데스는 초반에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데이터는 완벽하다. 트랙이 문제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다." 8년 동안 1등만 해왔던 엘리트 기술자들의 자부심이 오히려 독이 된 것입니다.
반면, 만년 2등이었던 레드불은 규정을 완벽하게 해석해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메르세데스가 고집을 피우는 사이 격차는 점점 벌어졌죠. 결국 시즌 중반이 되어서야 그들은 인정했습니다. "우리가 틀렸다. 이 차는 실패작이다."
자신들이 만든 차를 "Shitbox(똥차)"라고 부르며 자조하는 토토 울프 감독의 인터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실패를 인정하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에서 '명문 팀의 품격'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진정한 스포츠맨십은 승리할 때가 아니라, 패배했을 때 드러나는 법이니까요.
3. 추격자가 된 황제, 새로운 재미
아이러니하게도, 메르세데스가 무너지자 F1은 더 재미있어졌습니다. 독주하던 황제가 이제는 도전자가 되어, 앞서가는 페라리와 레드불을 쫓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언더독(Underdog)' 스토리가 쓰이기 시작했거든요.
7번이나 챔피언을 했던 루이스 해밀턴이 10위권에서 허덕이다가, 간신히 3등(포디움)을 하고 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셨나요? 예전 같으면 3등은 실패였겠지만, 지금은 값진 성과가 되었습니다. 당연했던 승리가 간절한 목표가 되자, 팀의 분위기도 바뀌었습니다. 더 치열해졌고, 더 인간적으로 변했습니다.
피트 월에서 책상을 내려치고 헤드셋을 집어던지는 감독, "차가 너무 느려요"라고 불평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드라이버. 완벽한 기계 같았던 그들에게서 '사람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전성기의 메르세데스보다, 지금 진흙탕에서 구르고 있는 메르세데스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4. 글을 마치며: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할까?
메르세데스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챔피언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무너진 자리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나는지가 진짜 실력이라는 것을요.
그들은 지금도 밤새워 공기역학을 연구하고 차를 깎고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은빛 화살이 F1의 정점에 서는 날, 그 감동은 8년 연속 우승했을 때보다 훨씬 클 것입니다. 고난을 겪은 영웅의 귀환만큼 멋진 드라마는 없으니까요.
메르세데스가 몰락한 거인이라면, 여기 "정말 망했다" 싶을 정도로 바닥을 쳤다가, 기적처럼 부활하여 최근 가장 핫하게 떠오른 팀이 있습니다. 주황색 돌풍의 주인공, '맥라렌'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F1 팀/머신 5일차] McLaren은 왜 '부활'이라는 말을 듣나: 꼴찌에서 우승권까지, F1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성장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체육 전공 F1 팬, '스포츠가 좋아요'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