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세계에서 '이적'은 흔한 일입니다. 축구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유벤투스로 갔다고 해서 축구를 갑자기 못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유니폼만 바뀌었을 뿐, 그의 슈팅 능력과 점프력은 그대로니까요. 이것이 인간의 신체를 쓰는 일반적인 스포츠의 상식입니다.
하지만 F1은 달랐습니다. 제가 F1을 보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미스터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다니엘 리카르도'라는 선수의 사례입니다. 그는 레드불 시절, 챔피언들과 대등하게 싸우며 '추월의 마법사'로 불렸던 톱클래스 드라이버였습니다. 그런데 르노를 거쳐 맥라렌으로 이적하자마자, 그는 거짓말처럼 평범한 선수, 아니 그 이하로 추락했습니다. 신인인 팀 메이트에게 매번 지고, 예선에서 탈락하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며 저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우승하던 선수가 갑자기 운전하는 법을 까먹었나?"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상황. 하지만 체육학적 관점에서 '도구와 신체의 상호작용'을 분석해 보니 그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F1은 단순히 빠른 차를 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에게 맞는 차'를 타는 것이 생명이라는 사실을요. 오늘은 F1 드라이버의 커리어를 망치기도 하고 구원하기도 하는, 잔인한 '궁합(Chemistry)'의 세계를 파헤쳐 봅니다.

1. 오버스티어 vs 언더스티어: 취향의 차이가 승패를 가른다
일반인들에게 자동차는 그저 엑셀 밟으면 나가고 브레이크 밟으면 서는 기계입니다. 하지만 극한의 한계를 달리는 F1 머신은 팀마다 고유의 '거동 특성(Handling Characteristics)'이 있습니다.
어떤 팀의 차(예: 레드불)는 앞바퀴가 예민합니다. 핸들을 조금만 꺾어도 차 머리가 확 돌아갑니다(Oversteer 성향). 반면 어떤 팀의 차(예: 과거의 맥라렌)는 뒷바퀴가 묵직해서 안정적이지만 코너 진입이 조금 둔합니다(Understeer 성향).
여기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막스 페르스타펜' 같은 천재는 앞이 예민한 차를 좋아합니다. 뒷바퀴가 좀 미끄러져도 본능적으로 잡아내며 코너를 날카롭게 공략하죠. 하지만 안정적인 차를 선호하는 드라이버가 막스의 차를 타면 어떻게 될까요? 코너를 돌 때마다 차가 팽이처럼 돌아버릴(Spin) 겁니다. 반대로 막스에게 둔한 차를 주면? "차가 말을 안 듣는다"며 화를 낼 겁니다.
즉, F1 드라이버의 실력은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라, '내가 선호하는 드라이빙 스타일과 차의 특성이 얼마나 일치하는가'에 따라 증폭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2. 근육 기억(Muscle Memory)의 배신
앞서 말한 리카르도 선수가 몰락한 결정적인 이유는 '브레이크'였습니다. 그는 코너 깊숙이까지 들어가서 늦게 브레이크를 밟는 기술이 장기였습니다. 레드불 차는 이걸 받아줬습니다.
하지만 이적한 팀의 차는 브레이크 감각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평소처럼 밟으면 바퀴가 잠기거나(Lock-up) 차가 균형을 잃었습니다. 드라이버는 수십 년간 몸에 익힌 '감각'으로 운전합니다. 시속 300km의 순간적인 상황에서 머리로 생각하고 발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척수 반사 수준의 '근육 기억'이 작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차가 내 근육 기억과 다르게 반응한다? 이때부터 드라이버는 '생각'을 하고 운전을 하게 됩니다. "아, 이 차는 여기서 살살 밟아야지." 이 0.1초의 망설임. F1에서 생각하고 운전하는 순간 이미 진 것입니다. 자신감은 바닥을 치고, 랩타임은 0.5초씩 느려집니다. 실력이 사라진 게 아니라,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억지로 뛰려다 스텝이 꼬인 것입니다.
3. "천재는 차를 탓하지 않는다"는 거짓말
우리는 흔히 "진정한 고수는 장비를 가리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F1에서도 알론소 같은 일부 '괴물'들은 어떤 똥차를 줘도 어떻게든 적응해서 성적을 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드라이버, 심지어 월드 챔피언 출신인 '세바스찬 베텔'조차도 차의 특성이 자신의 스타일과 안 맞으면 평범한 선수로 전락했습니다.
그래서 F1 이적 시장은 거대한 도박판입니다. 팀은 비싼 돈을 주고 스타 드라이버를 영입하지만, 그 드라이버가 우리 팀 엔지니어들이 만든 차와 궁합이 맞을지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아무도 모릅니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은 핑계가 아닙니다. 자신의 모든 감각을 리셋하고 기계에 다시 동기화시키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무명이었던 선수가 팀을 옮겨서 갑자기 포텐이 터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건 그가 갑자기 운전을 잘하게 된 게 아니라, 드디어 '자신의 영혼의 단짝' 같은 머신을 만난 것입니다. 이런 '만남의 축복'이 F1 커리어의 8할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4. 글을 마치며: 드라이버를 너무 쉽게 비난하지 말자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저는 성적이 부진한 드라이버를 보고 무작정 "퇴물"이라고 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지금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마라톤을 뛰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니까요.
F1은 [사람 20% + 기계 80%]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20%의 사람조차 기계와의 '교감'에 실패하면 0%가 되어버리는, 참으로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스포츠입니다.
자, 이제 드라이버와 팀의 관계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F1 머신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그 천문학적인 돈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엔진? 타이어? 아닙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곳,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를 잡기 위해 수천억 원이 쓰이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F1 팀/머신 7일차] F1 머신은 어디에 가장 많은 돈을 쓰고 있을까: 1000분의 1초를 줄이기 위한 자본의 맛에 대해 이야기하며 'TEAM / MACHINE' 시리즈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체육 전공 F1 팬, '스포츠가 좋아요'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