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에 처음 입문했을 때, 뉴스에서 "F1 머신 한 대 가격이 약 150억 원에서 200억 원에 달한다"는 기사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자동차 한 대에 무슨 짓을 했길래 강남 아파트 몇 채 값이 들어가는 걸까요? 저는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엔진이 엄청 비싼가 보다", 아니면 "차체를 금이나 다이아몬드보다 비싼 신소재로 만들었나?"
하지만 F1을 깊이 파고들수록 제가 완전히 잘못짚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부품값도 비쌉니다. 하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죠. F1 팀들이 쏟아붓는 수천억 원의 예산은 트랙 위에 있는 자동차 자체가 아니라, 그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밤새 돌아가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읽고 나면, 트랙을 달리는 20대의 차들이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자본과 두뇌가 응축된 결정체'로 보이게 될 것입니다. TEAM/MACHINE 시리즈의 마지막, F1 머신의 가격표 속에 숨겨진 비밀을 해부해 봅니다.

1. 부품값이 아니라 '실패 비용'이다
여러분이 보는 F1 머신의 앞 날개(프런트 윙) 가격은 약 2억 원 정도 합니다. 탄소섬유(카본)라는 재료비와 제작비만 따지면 몇천만 원이면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왜 2억 원일 까요? 그 날개 하나를 만들기 위해 폐기된 1,000개의 날개 디자인 값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F1은 '프로토타입(시제품) 레이싱'입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양산차가 아닙니다.
엔지니어들은 0.01초라도 더 빠른 모양을 찾기 위해 슈퍼컴퓨터로 수만 번 시뮬레이션(CFD)을 돌리고, 윈드 터널(풍동 실험실)에서 모형을 만들어 바람을 쏘아봅니다. 수십 명의 박사급 인력들이 몇 달 동안 매달려 연구한 끝에 "이거다!" 싶은 디자인 하나가 나옵니다. 즉, 머신에 달려 있는 부품은 수많은 실패와 연구 개발(R&D) 비용이 압축된 '최종 정답지'인 셈입니다. 우리가 지불하는 돈은 종이 값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지식의 값인 것처럼요.
2.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를 사는 돈
그렇다면 그 연구비는 어디에 가장 많이 쓰일까요? 엔진? 타이어? 아닙니다. 바로 '공기역학(Aerodynamics)'입니다.
엔진(파워 유닛)은 규정이 엄격해서 성능 차이를 내기가 힘듭니다. 메르세데스 엔진을 쓰는 '윌리엄스' 팀이 꼴찌를 하고, 같은 엔진을 쓰는 '맥라렌'이 우승을 하는 이유가 뭘까요? 엔진은 같지만, '차체 껍데기(Aerodynamics)'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팀들은 1년 예산의 막대한 부분을 윈드 터널 가동비와 공기역학 엔지니어 연봉으로 씁니다.
직선에서 공기 저항을 줄여 최고 속도를 내고(Drag Reduction), 코너에서는 공기를 이용해 차를 바닥에 짓누르는(Downforce) 이 모순된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차체 표면의 곡선 하나, 나사 구멍 하나까지 설계합니다. 심지어 페인트 무게인 1kg을 줄이기 위해 도색을 벗겨내고 검은색 카본 그대로 달리는 처절함까지 보입니다. F1은 말 그대로 '돈으로 공기를 조각하는 예술'입니다.
3. 핸들 하나에 중형차 한 대 값
차량 내부를 들여다보면 가격은 더 충격적입니다.
드라이버가 잡고 있는 스티어링 휠(핸들)은 약 6천만 원에서 1억 원입니다. 왜냐고요? 단순한 핸들이 아니라, 차의 모든 센서를 조작하고 데이터를 전송하는 초소형 컴퓨터이기 때문입니다. 버튼만 20개가 넘고, 뒷면에는 클러치 패들까지 달려 있죠.
더 놀라운 건 이 모든 것이 '소모품'이라는 사실입니다.
한 경기 뛰고 나면 브레이크 디스크는 갈려나가고, 타이어는 버려지고, 바닥(플로어)은 긁혀서 못 쓰게 됩니다. 주말 한 번 경기를 치를 때마다 수억 원어치의 부품이 사라집니다. 만약 사고라도 나서 차가 반파된다? 순식간에 10억, 20억이 공중분해 됩니다. 하위권 팀 감독들이 사고 친 드라이버에게 "제발 차 좀 부수지 마!"라고 화를 내는 건 단순한 잔소리가 아니라, "우리 팀 1년 치 개발비가 날아갔다"는 피맺힌 절규입니다.
4. "돈으로 속도를 살 수 없는 시대"가 오다
과거에는 페라리나 메르세데스 같은 부자 팀이 돈을 무제한으로 쏟아부어 우승을 독차지했습니다. 이건 불공정하다는 비판이 나왔고, 결국 F1은 '예산 상한제(Cost Cap)'를 도입했습니다. 모든 팀이 1년에 약 2,000억 원(정확한 수치는 매년 변동) 이상은 못 쓰게 막은 것이죠.
이제는 돈이 많다고 이기는 게 아니라, '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느냐'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100억을 써서 0.1초를 줄일 것인가, 10억을 써서 0.05초를 줄일 것인가. 이 가성비 싸움 때문에 엔지니어들의 머리는 더 아파졌지만, 덕분에 중위권 팀들도 아이디어만 좋으면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맥라렌의 부활도 이 예산 상한제 덕분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5. 글을 마치며: F1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과학 실험이다
이제 트랙 위를 달리는 F1 머신이 조금 다르게 보이시나요? 그것은 단순한 자동차가 아닙니다. 수백 명의 천재들이 머리를 맞대고, 수천억 원의 자본을 투입해 만들어낸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과학 실험실'입니다.
직선 주로에서 다른 팀보다 시속 5km가 빠르다면, 코너를 돌 때 다른 팀보다 조금 더 안쪽을 파고든다면, 그것은 그 팀이 돈을 더 '잘' 썼다는 증거입니다. F1의 순위표는 곧 '자본과 기술의 효율성 성적표'인 셈이죠.
자, 이렇게 7일간의 [TEAM / MACHINE] 시리즈를 통해 F1의 하드웨어와 팀들의 이야기를 모두 마쳤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떤 차가 좋은 차인지, 왜 팀들이 저마다의 사정으로 울고 웃는지 이해하게 되셨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차와 훌륭한 팀이 있어도, 경기를 망치는 '제3의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심판, 즉 'FIA의 규정과 판정'입니다.
"아니, 저게 왜 반칙이야?", "왜 쟤는 봐주고 나는 벌점을 줘?"
팬들의 혈압을 올리는 애매하고도 논란 가득한 F1의 룰.
다음 시간부터는 새로운 시리즈, [ 논란 / 룰 시리즈 1일 차] 처음엔 이해 안 됐던 F1 페널티 판정들: "이게 왜 벌이야?" 억울함과 공정함 사이를 주제로, F1의 복잡한 규칙 세계를 시원하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체육 전공 F1 팬, '스포츠가 좋아요'였습니다.
TEAM / MACHINE 시리즈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